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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P Mar 14. 2024

2. 연예인과 팬, 오묘한 관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오늘은 ‘연예인’과 ‘’의 관계를 이야기해보려고 해.

연예인과 연예인을 동경하며 가까워지고 싶은 팬. 이 둘은 무슨 관계로 이어져 있을까.


최근 유명 걸그룹과 남자 배우의 연애설이 떴잖아. 말 그대로 ‘next level’인 4세대 대표 아이돌과 인기에 탄력을 받기 시작한 남자 배우의 만남은 모두를 놀라게 했어.

나도 놀랐지. 친구와 산책하면서

“아, 아이돌은 누구랑 사귈까?” “아마도… 이순신 장군님의 환생이지 않을까? 아니면 세종대왕님…? “

이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었는데, 이순신 장군님이 그 배우였다니. 재밌더라고.

팬들 중에서는 낙담하는 사람들도 많았어. 아마 대한민국 미혼 남성의 1/3 정도는 이유 모를 상실감을 느꼈을지도.


그리고 그다음 아이돌의 현장 스케줄에 홈마가 아무도 가지 않았다는 유튜브 숏츠를 봤어. 얼마 안 있어 소속사 앞에 트럭으로 해당 아이돌 연애를 비판하는 트럭이 나타났지. 아이돌 스케줄에 나타나지 않은 홈마와 트럭을 보낸 팬의 마음은 뭘까.

자기 애인을 뺏긴 것 같았을까, 아님 자신이 아이돌을 위해 쏟아부은 돈이 아까웠던 걸까. 무엇을 아이돌에게 바랐기 때문에 비난하는 걸까.

아마 그들은 팬으로서의 자신과 ‘그들’의 삶에서의 자신을 구분 못하기 때문일 거야.


15,6살에 겪은 내 이야기를 해볼게. 난 한 여가수의 팬이었어. 귀여운 외모에 삼단 고음을 하던 이 가수에 빠졌고, 학교 대표 팬이라 할 만큼 모르는 게 없었지.

그러다 당시 인기 있던 남자 아이돌과 연애설이 난 거야. 둘이 같이 잠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녔고, 친구들은 나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며 놀려댔어. 솔직히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게 좋지 않았어.

무의식에 ‘나랑 사귈 수도 있지’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현실은 그게 아니지. 일주일 동안은 부정했어. 기사가 잘못된 거라고.

하지만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때 팬으로서 가수 곁에 있는 나와, 개인으로써 가수 곁에 있는 나는 다르다는 걸 느꼈어.


내가 팬으로서의 내 아이돌에게 주는 사랑과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주는 사랑을 분야가 다르구나. 서로가 인생에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지만, 그 한계가 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내 아이돌이 불쌍했어. 사생활이 없는 직업이라 감수를 한 다곤 해도, 나처럼 두 감정이 혼재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얼마나 상처를 받고 있을까. 그들도 모두 팬이었을 텐데. 그러한 사람들까지 안고 가야 하는 가수님이 힘들겠다… 잘 이겨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연예인과 팬. 이 둘의 관계는 오묘해. 인생 여행길로 보자면 연예인들은 내 옆에서 걷지 않아. 근데 그들의 무대를 보고 일상을 지켜보며 기쁨을 느낄 때면 나와 같이 걷는 기분이 들어.

연예인들도 나를 몰라. 물론 내가 매일 행사를 뛰고 퇴근길에 선물을 주고 편지를 쓴다면 나 ’ 백승권‘이라는 존재는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백승권은 ‘팬’이라는 집단 소속으로 연예인의 옆을 걷는 거지. 사람 ‘백승권‘이 연예인들의 인생길을 함께 걷는다곤 생각 안 해.


연예인 그들도 ‘아이돌’로써의 삶뿐 아니라 ‘아이돌이기 전의 그들’로써의 삶이 있을 거야. 그들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10,20대들과 다르지 않아. 서로 존중해 줄 자신의 영역은 지켜주고, 팬으로서, 아이들로써 맞닿을 수 있는 그 지점에서만 서로 활발하게 소통하는 게 어떨까.


서로 다른 자아로 만난 사람들이기에 물과 기름처럼 맞닿을 순 있지만 섞일 수 없는 존재들이랄까. 그렇기에 같이 인생의 여행길을 걸어도 걷는 느낌이 거의 안나는 거지. 그 둘이 맞닿을 때만 가끔 만난달까.

그래서 연예인들을 ‘다른 세상 사람이다’라고 하는 게 아닐까?


덕질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영역이 다름을 인지하고, 그 부분을 존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너무 아름다운 관계 아니야?

난 가장 순수한 사랑의 관계는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을 주는 마음’이라고 생각해.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게 어딨겠냐만은, 건강하게 아이돌을 덕질하는 우리의 마음이야말로 바로 그런 마음이 아닐까. 거기에서 무언가를 바라기 시작하는 순간, 불만이 생기고, 답답함이 생기고, 핀트가 나가게 될 거야.

팬으로서는 개입할 수 있지만, 내가 그들의 삶을 개입하려는 순간 팬이 아닌 ‘내‘가 되니까. 그건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널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너도 날 이제 알아야 해!’라고 협박하는 거와 같지. 얼마나 무섭겠어.


나는 걸그룹 ‘여자친구’의 팬이야. 2015년까지 그 가수님의 팬이었다가, ‘오늘부터 우리는’이라는 노래를 알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주욱.

그들의 무대와 v라이브를 챙겨보며 행복함을 느꼈어. 군대 시절 내 사물함에는 그들의 앨범 전집과 CD플레이어가 있었어. 군대에서 힘들고 행복해지고 싶을 때 그들의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위로를 많이 받았거든. 콘서트에 참가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휴가를 나가기도 하고, 계약해지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날달걀 던지려고 사옥 앞까지 갔었다…물론 구경만 하고 돌아왔지만.

내 20대를 통째로 함께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꽤나 진심이었던 관계야. 앞으로 내 인생 마지막 덕질을 하는 그룹임이 분명해.

그들이 가수로서도 행복하고, 인간으로서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노래도 잘 되고, 좋은 소속사를 만나 다양한 무대 위에서 행복한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육체도 건강하고, 정신도 건강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연애도 하고!

그들이 행복하면 나도 기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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