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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P Mar 21. 2024

간절함은 눈에서 드러난다.

골때녀의 흥행을 몰라봐 죄송합니다.

나는 5살 때부터 축구를 했어. 영재는 아니었지. 하지만 승부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어. 정직하게 피지컬, 뇌지컬을 사용해서 상대와 겨루는 것이기에 속임수가 없거든. 정정당당한 거야.


나에게 있어 ’ 재밌는 축구‘는 이기는 게 제일 중요해. 정직하게 결과가 나오는 대결에서 지고서 어떻게 재밌을 수가 있어?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지는 건 기분이 좋지 않아. 무조건 이기고, 나머지를 생각해야지.

성장을 지향하는 게 두 번째로 중요했어. 진 건 진 거고, 거기에 안주해 성장하지 못하면 그다음에도 똑같은 결과일 테니까. 반 발짝이라도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세 번째가 팀워크. 동료와 함께하는 으쌰 으쌰에서 오는 감동이었지. 하지만 이건 기본적인 실력이 있어야지 가능하잖아.

 그러다 보니 공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는 사람? 축구를 왜 하는 거지? 공을 잡고, 동료에게 공을 패스하고 필드를 뛰어다니는 세 가지가 전부인 스포츠에서 두 가지를 못 한다면 뛰어다니기만 하는 건데, 그럴 거면 마라톤을 하는 게 더 맞지 않나? 싶었어.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선입견’이 생긴 거야. 내가 뛰는 조기축구 팀이 있는데, 거기에 몇몇 분은 공을 주면 못 잡아. 패스? 기대도 할 수 없어. 이런 상황에서 축구하려고 하니까 서로가 힘든 거야. 가끔은’왜 나오는 거야. 이 정도면 민폐 아냐? ‘싶었다니까. 팀원과 어울리기 위해서 노력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화도 좀 나더라고.

골때녀 시즌1 경기들을 봤을 때 딱 그런 감정을 받았어. 몇 년 전에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타며 경기를 봤었거든. 솔직히 충격 받았어. 선수들이 볼 터치도 제대로 못 해, 헛발질이 제대로 된 패스보다 많아. 그런 경기를 중계하는 거지. 이게 되겠어? 딱 보고 ‘망하겠네.’ 싶었어.


그도 그럴 것이 난 ‘축구 콘텐츠’를 정말 많이 봐왔거든. ’ 날아라 슛돌이,‘ ‘청춘 FC’, ‘골든 일레븐‘, ’ 뭉쳐야 찬다 ‘ 등 TV 예능부터 ‘슛포러브’. ‘고알레’ ‘제이풋볼’ 등등 다양한 축구 콘텐츠들을 봐왔지만, 러닝머신에서 나오던 프로그램은 너무 실망스러웠어. 실력도 없고, 진지하게 하는 것이 재미도 못 잡고. ‘뭉쳐야 찬다 1’도 못했지만, 편집을 재밌게 했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다고 생각했거든.

시즌2를 한다고 했을 때도, ‘잘하는 사람 많이 들어와서 팀 밸런스 다 깨지고 원년 멤버들 그냥 들러리 돼버리는 거 아니야?’ 걱정이 되더라고. 원년 멤버들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근데 내 생각이 완전 틀렸어. 프로그램은 시즌2, 3을 넘어 지금 시즌 5까지 성공해 버린 거야. 이유가 뭘까? 뭐가 여자축구 열풍을 이끌 정도로 사람들을 매료시켰을까?


사람들이 실력과 무관하게 노력하고 성장하는 선수들. 그리고 팀의 서사가 흥행의 원동력이라고 말하는 기사가 많이 보였어. 그 기사를 보면서도 …이었거든? 근데 어제 그 서사를 느낄 수 있었어.


어제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타고 있었는데 시간대가 골때녀 본방송 시간이더라고. 모니터링도 할 겸 채널을 돌렸지. 스페셜 매치인지 감독님들 이름으로 팀을 만들어서 경기하고 있더라. 시즌2 초반까지만 경기를 봤던 난 ‘아는 얼굴이 있음 얼마나 있겠어~’하고 경기를 봤지.

근데 아는 얼굴이 많더라? 시즌 1부터 계속 있던 이현이, 오나미랑 시즌2의 채리나, 윤태진이 뛰고 있는 거야. ‘오호, 얼마나 늘었으려나.’ 경기를 보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

진짜 진짜 많이 늘었더라. 시즌 3개 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이 사람들? 패스가… 돌아! 그것도 잘…이런 건 없었는데…? 스루패스 뭐야. 수비할 때 압박하는 능력은 또 뭐야. 같은 사람이 아닌 줄 알았어.


이현이가 멋진 필드 골을 넣었는데, 그전에도 킥이 장점이었지만 더 늘었더라고. 골을 넣은 이현이의 눈에서 ‘난 선수야. 난 이 경기를 이길 거야’ 이런 눈빛이 보였어. 살짝 심쿵함.. 심지어 경기도 박빙.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가 9번 키커까지 가는 명승부였어.

윤태진이 PK를 실축하고 바닥에 엎드렸을 때, 보는 내가 슬퍼 보이더라. 얼마나 이기고 싶었을까.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나도 모르게 윤태진 선수를 응원하게 되더라고.

그 외에도 한 명 한 명 그 사람의 서사를 담아놓은 공을 찰 때마다 선수의 간절함이 느껴졌고, 그것을 공을 통해 멋지게 보여줬지.


여전히 실력이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여기에선 그 절대적인 실력이 중요하지 않았어. 최선을 다해서 숨이 차 쓰러질 때까지 뛰는 간절함. 부족한 피지컬을 커버하는 전략과 깡. 간절히 승부하고 결과를 만들어 냈을 때 포효. 남자축구에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동이었지. 내가 본 다른 축구 예능 다 합쳐서 이 사람들이 제일 열심히 뛰었어


내가 틀린 거지. 스포츠에 가장 중요했던 ‘노력’을 잊은 거야. 러닝머신을 뛰며 내가 흘리는 이 땀과 저들이 필드 위에서 흘리는 땀이 다른 게 아닌데. 승부욕에 빠져 그 뒤에 가려진 노력을 내가 못 본 거지. 주변에서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금 저 정도면 절대 못 늘어~늘어봤자 뭐’ 이렇게 된 거야. 경기 후에 윤태진 선수의 서사를 유튜브 클립으로 찾아봤고, 선수님의 경기를 보면서 감동도 받았어. 그리고 짧은 나의 생각에 반성했다. 죄송합니다.


항상 ’다른 사람은 어떨까?‘을 본다고 하지만, 결국엔 나를 보게 되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 골때녀 시즌6은 열심히 봐보려고 함!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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