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P Mar 29. 2024

억까의 개똥벌레.

난 반딧불이.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엄청나게 큰 브라운관 TV가 있었다. 선생님은 그 TV로 수업하셨는데, 종종 노래 모음을 틀어주셨다. 슈렉이 생각나는 마법의 성부터, 네모의 꿈, 김종국 형님이 사랑스러워까지.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게 공부를 안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지. 그중에서 좀 슬픈 노래가 하나 있었는데, 개똥벌레라는 노래야.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개똥벌레는 왜 친구가 없었을까. 초등학생의 생각에서는 '똥을 굴리며 살아가기 때문인가…. 같은 개똥벌레들끼리도 친구를 안 해주나…. 자발적 왕따 같은 놈들이네…. 손에 구린내 때문에 스스로들 거리를 두나 보나.' 싶었지.



근데 알고 보니 개똥벌레가 반딧불이더라?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알려줘서 알게 되었지. 훈민정음해례본에서는 '반되'로 표시되어 있고, '반되블'이라는 이름이었던 거지. 그들이 내는 불빛이 반딧불인 거고. 그런 반딧불이가 왜 개똥벌레로 알려졌을까? 여러 가지 설에 있어서는 지천으로 깔려 있어서 개똥벌레다~라고 붙여졌다고도 하더라. '개똥'이 보잘것없고 천한 것을 뜻하는 접두사기에 지천에 흔한 애들을 개똥이라 부른 거지. 습한 곳을 좋아해 거름 밑에 숨어있는 그런 성질 때문에 '얘네는 똥을 먹나 봐.'해서 겸사겸사 개똥벌레라고 불렀던 거야.


이름부터 억지로 비난을 당한 거지. 반딧불이가 개똥벌레로…. 반딧불이는 엉덩이에서 불빛도 나오는 멋진 벌렌데…. 개똥이라니! 거기에 친구가 없다는 억지로 비난까지 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고등학생 때에 와서 개똥벌레의 누명을 벗긴 느낌이었어.



그리고 또 10년이 흘러서 최근,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를 들었어.

노래방에서 친구가 부르는 걸 듣고 노래가 좋아 자주 들었지. 어렸을 적 나는 되게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에 닥쳐보니 뭐 별것도 아닌, 그냥 한 사람...임을 반딧불이에 비유한 짠한 노래랄까. 듣다 보니 이 노래에 반딧불은 개똥벌레 노래보다 더 짠하더라.


'나는 내가 빛나는 별 인 줄 알았어요….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불빛이 나는 내가 별인 줄 알았다는 반딧불…. 개똥벌레라는 누명을 벗어냈지만, 스스로가 하늘에서 떨어진 별도 아니고 그냥 '개똥벌레'라는 것을 체념하는 노래였어.

개똥벌레에서는 '그냥 친구 없는 개똥벌레'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거였지. 이 노래에선 '응 너 반딧불이? 너 뭐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개똥벌레야~' 확인 사살을 하는…. 슬픈 노래.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개똥벌레라는 인식이 박혀있는 걸까…. 불쌍한 개똥, 아 아니 반딧불이….하지만 누가 뭐라고 하던 반딧불이는 반딧불이로서 하루를 또 살아가겠지. 밤이 되면 예쁜 불빛도 뽐낼 거야.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가 죽겠지. 처음 '나는 반딧불' 노래를 들으면서 마치 내 얘기 같아서 공감이 많이 되었는데,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하면서 살려고. 그게 인생이지. 그러다 보면 또 몰라. 반딧불이 포켓몬스터 볼비트가 네오비트로 진화하는 것처럼 나도 진화할지도!




이전 06화 엄마의 걸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