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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P Mar 12. 2024

1. 군생활에 인연.

월요일, 목요일이 정규 업로드 날짜이지만,  어제 예비군을 다녀와서 지금 글을 올립니다. 죄송합니다ㅜ


어제 예비군을 다녀왔어. 이제 예비군 5년 차…. 작년까지 2박 3일 동원훈련을 다녀왔기에, 올해부터는 하루만 가면 되더라. 너무 좋아!


난 군생활이 정말 싫었어. 군생활이 힘들었거든. 사람들을 모두 규격화하고, 개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 모두가 무색무취하고, 항상 화나 있는 사람들. 의미를 찾기 힘든 훈련들과 군생활.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뭐가 되어 있는 인간쓰레기들. 그런 사람들과 같이 지내고 어쩔 땐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어. 난 굽신거리고 그런 거 잘 못하거든.

그리고 몇몇을 제외하고는 군대를 나오고 나서 연락을 할 거란 기대를 안 했어. 동기 중에서도 친한 애들 별로 없었으니까. 진짜 ‘그냥 같이 지내다가 말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어찌 됐든 예비군은 그런 게 아니니까~오랜만에 군복을 입고, 훈련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어.

군필자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실 텐데, 군복을 입으면 꼭 어디가 아프다? 난 군복을 입기만 하면 왼쪽 무릎이 아파. 진짜로 아파. 그 전날 축구를 4시간 뛰어도 멀쩡하던 무릎이 아픈 게 참 신기하더라.


대화역에서 군복 입은 남자들이 많이 타더라고. ‘나랑 같은 조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겠군’ 하면서 그들을 훑어봤지. 수색대, 특급전사, 해군, 다양한 부대부터 튜닝이 빵빵하게 된 인싸식 군복부터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은 단출한 군복까지.


전역하기 전까지는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녔지만 전역을 하면서 자신들의 개성을 뿜어내고 있더라. 전역복들을 보다 보니 나에게 전역모를 선물해 줬던 후임들이 생각났어. 진짜 멋졌는데, 쓰기가 무거울 정도로 금빛 장식들이 빽빽했어. 그걸 전역신고할 땐가… 받았던 거 같은데. 그때 후임들이 만들어 준 상장도 있었거든.

상장 이름이….‘신바랑 결혼할 과대망’ 상이었어. 내가 걸그룹 여자친구의 9년 차 팬이거든. 그래서 청소시간에 뮤비를 틀 수 있는데, 그때마다 여자친구 뮤비를 후임들 생활관에 가서 함께 강제 시청했지.

이제 보니 날 싫어했을 수도… 미안했다 얘들아. 복도에서 애들한테 손가락 총으로 ‘탕탕탕!’ 하면 애들이 ‘핑거팁!’해줬었는데 이게 바로 부조린가…. 강요한 건 아니었어 얘들아. 미안하다 정말. 많이는 안 했어요. 진짜.


다양한 옷들 위로는 다들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어. 다들 힘이 없더라. 군복만 입으면 ‘눈빛이 탁해지고 체력이 떨어지는’ 그런 저주에 걸리나 봐. 버스에서 내려서 훈련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모두 터덜 터덜 걸어갔지.


훈련장안에 가니 사람이 거진 300명? 넘게 있더라. 무슨 상관이야. 오늘 보고 말 사람들인데. 내 조에 사람들을 보니, 내 옆에 있는 예비군 아저씨가 폐급인 것 같았어. 자기 번호를 못 찾아가더라. 그래서 조기퇴소는 포기했지.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하라는 거 하고, 쉬라면 쉬고 화장실가라 하면 가고, 시키는 것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화생방 교육을 하기 전에 식당에 들어가서 잠시 쉴 때였어. 탄띠와 방탄헬맷을 쓰고 있으면서 대기했어.

3월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춥더라. 내가 패딩을 처음 모였던 강당에 벗어두고 온 잘못이지. 오전 내내 오들오들 떨면서 훈련을 받아서 핫팩이 절실하게 필요했었어.

마침 핫팩 상자가 보이길래 핫팩을 꺼내서 조물조물하고 있었어. 그때 갑자기 핸드폰에 카톡이 오더라. 군생활을 같이한 맞선임이었어.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었는데, 나를 행정병으로 뽑아준 은인이지.


그 형이 내 맞선임이어서 군생활 내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 군인 때 난 매일 화나 있고 씩씩거리고 그런 상태였어. 이 형이 그런 날 아주 잘 컨트롤해줬었거든. 다른 사람 말은 ‘에휴 ㅂㅅ인가?’ 싶었는데 이형 말은 항상 합리적이었어. 그래서 이 형 말은 진짜 잘 따랐던 것 같아.


‘승권아, 뒤돌아봐’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맞선임 형이 있는 거야. 너무 깜짝 놀랐어. 같은 조는 아니었지만 같이 훈련을 받는 다른 조에 있었던 거지. 너무 반가워서 당장이라도 가서 수다를 떨고 싶었지만, 아직 훈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만나기로 했어.


“형! 나인 거 어떻게 알았어??”

“아니, 앞에 누가 방탄 쓰고 있는데 뒷모습이 너 같더라고. 그래서 어라? 했는데 앞모습 보고 역시 맞는구나! 확신했다.”


이 얘기를 듣는데 뭔가 찡했어. 빵탄을 쓰고 있는데 그 뒷모습만으로 사람을 맞춘다? 쉽지 않거든. 진짜 다 똑같이 생겼어. 근데 뒷모습만 보고 날 알아본다는 게 감동이었어.

군생활 동안 훈련마다 날 케어해 주고, 데리고 다니고, 같이 탄약고 근무도 서고 하면서 나에 대한 이미지가 무의식에 각인된 거야. 얼마나 이 사람이 날 생각해 줬으면 뒷모습만 보고 바로 날 알아냈을까. 정말 감사하고, 감사했지.


그때 ‘아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내가 군대에서 같이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멀리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거기에서도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 더 있었을 텐데, 사람들을 잘 본다고 생각했던 난데 오히려 너무 내가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배척한 것 같았어. ‘사람’을 주제로 책을 쓰기 시작했기에,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과거의 나를 반성했어.


그리고 또 한 가지 신기한 게, 그 형이 빵탄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진짜 엊그제처럼 똑같은 모습인 거야. 양구로 순간이동한 기분이 들더라. 양구의 그 맑은 공기가 맡아지는 것 같았어. 그러면서 그 형이랑 함께한 군생활이 촤라라라락 스쳐 지나가더라. 형이랑 군대에서 재밌는 일들, 화나는 일들 등등 얘기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지.


그리고 이 형이 조기퇴소하고 난 정시 퇴소했는데, 그걸 기다려주고 나를 친구랑 약속 장소까지 태워다 줬어. 진짜 너무 좋은 형이야…..

“형 태워줘서 고마워~ 다음에 밥 한번 먹자~!!”

“그래~ 잘 놀고~ 나 간다~”


떠나가는 형의 차를 보면서 뭔가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

그동안 군대에서 만난 인연들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달까. ‘동기한테 연락이나 해볼까?’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을 정도니까. 좀 많이 늦긴 했지.

19년 8월에 전역했는데, 이제 와서 연락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달까. 훈련소에서 옆자리에 자던 동기부터 나보다 5살, 1살 많던 내 맞후임 형님들. 내가 전역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1살 많은 분대 막내 형. 이제 보니 난 군생활 내내 형님들 사이에서 지냈군… 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보고 싶어요 형들.


그리고 이 감정을 전역 5년 후에 느끼게 해 준 맞선임 형.

이 형한테 군생활의 모든 것을 배웠는데, 아직까지도 나에게 가르침을 주다니, 새삼 멋진 형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형의 차는 시야에서 없어졌더라. 그 자리에 꽤나 오래 서 있었던 것 같아.

정신을 차리고 난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셨어. 한잔 한잔 들어갈 때마다 ‘역시 연락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취해버렸기에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군생활을 견디게 해준 친구들, 가족 그리고 군대 사람들에게 감사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어렸네요. 언젠가 마주친다면 옛날 이야기라도 하면서 밥이나 한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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