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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P Jul 30. 2024

발견, 발명.

나태주 시인과 무한도전 <돈가방을 가지고 튀어라>을 보며.

꾸준하기 너무 어렵다.


3주 만에 브런치를 들어왔다.

글을 3주 동안 쓰지 않으니 감각을 다 잃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가 무섭달까. 전보다 퇴화한 나의 실력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마주해야지. 도망간 곳에 낙원은 없으니.


요즘은 글을 쓸 동력도 없다. 주변에 재밌는 이야기도 없고, 모니터링하는 프로그램 분석한 글을 써볼까.. 하지만 스터디할 때 많은 얘기를 해서 여기에 또 적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생각해 낸 오늘의 주제는 '발견, 발명'이다.


일전에 시집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당근밭 어쩌고.. 였는데 제목은 까먹어버렸다.

시집을 선물 받던 순간, '헉' 했다. 올해 초 경의중앙선 지하철에 독서칸에 갔던 기억이 났다.

그때 20분 동안 시 한 개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던 부끄러운 순간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헉 했던 얼굴을 상대방도 봤다. 시집을 좋아하지 않냐고 하는데, 일단 좋아한다고 둘러댔다.

좋아하기보단 정복해야 할 숙제 같은 존재긴 하지만.


시집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유튜브에 '시 이해하는 법'을 검색해 본다. 시의 구조, 발상법 같은 영상들이 나온다. 훑어본다. 모르는 내용은 없었다. 세상 같은 방식으로 시를 작성하는 시인은 없으니까. 각자의 감성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나태주 시인님이 시를 설명해 주는 콘텐츠를 보게 되었다.

'창작시'를 추첨받아서 이를 해석해 주는 콘텐츠였다. 추첨받은 시도 난해했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알겠지만, 정확한 내용 캐치는 어려운? 그래도 읽을만한 시였다.

나태주 시인님은 그 시를 두고 '시에는 발견이 있고, 발명이 있습니다. 발견은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시로 옮기는 것이고, 발명은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거지요. 이 시는 발명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래 보인다. 이 세상 어디에도 저런 연상법은 없던 것 같으니까. 그와 동시에 나태주 시인님의 시가 떠올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1>


이게 발견이지. 확실하게 이해가 되었다.

발견도 어렵지만, 발명은 얼마나 어렵겠어.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작문, 혹은 PD의 일을 '발견, 발명'의 관점으로 봐봤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내가 쓰는 글은 주로 '무언가를 발견' 혹은 '발견 + 발견의 결합.'으로 적었던 것 같다.

옛날에는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발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세상에 없던 캐릭터가, 세상에 없던 일을 겪고 반전의 엔딩을 겪는 그런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이야기.


하지만 글쓰기를 2N 년 동안 하지 않은 내가 하루아침에 뚝딱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쓰자'라는 마음으로 주변에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렸다. 좋아하는 취미, 영화, 스포츠팀, 사람, 영화, 노래, 드라마, 등등 좋아하는 것들을 내 시선으로 6개월을 적었다. '알고 있던 것을 다시 발견'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발견의 촉을 새우며 살다 보니 주변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그런 소재들도 좀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1가지의 발견만으로는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했다. 좀 짜치달까. 다른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걸 적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2가지의 무언가를 발견해서 나만의 뜻으로 해석하는 글쓰기를 시도했었다.

근데 이건 좀 어려웠다. 사람들에게 내 글의 논리, 흐름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깔쌈하고 간결하게 이해시켜주고 싶은데, 이런 류의 글들은 혀가 길었다.  재미없다는 뜻.ㅋㅋㅋㅋ


그럼 PD의 일로 가볼까.

학교에서 해주는 특강을 들었던 적이 있다. 거기에서 강사님이 '창조는 신이하고, 베끼는 건 인간이 한다'라는 명대사를 날려주셨다.

KBS PD출신이셨는데, 저작권, IP라는 개념이 확실하지 않던 옛날에 외국에서 재밌던 포맷을 가져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 대박을 치셨던 경험이 있으셨단다.

지금이야 재밌는 걸 따라 하는 게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몇 십 년 전에 외국 프로그램까지 관심 있게 찾아보는 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PD들 중에서는 정말 '새로운 포맷을 발명'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걸 세상에 '발명'한 건 아니다.

결국 다 어딘가에 있던 이야기, 다른 장르에서 하던 포맷, 소재들을 발견해서 내 것처럼 만들어낸 것이다. 때로는 진짜 아무도 생각 못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들 이름을 알겠지.


결국 '발견'하는 능력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을 찾고, 재밌는 물건을 찾고, 게임을 찾고, 여행을 찾고, 스포츠를 찾고. 다 그런 거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를 아는 게 중요한 거였다. 사람 마음 훔치는 더럽게 재밌고 더럽게 힘든 직업이었던 것.



어제, 무한도전 옛날 에피소드를 봤다. <돈가방을 가지고 튀어라> 특집.

무한도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각각의 캐릭터가 어떤 것인지를 묻는 다면 보여줄 수 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십몇 년 전에 볼 때는 그냥 재밌게 봤었는데, 요즘 다시 보니 어쩔 수 없이 분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 재밌게 볼 수 있는 예능이 없다고ㅜㅜㅜ 난 왜 행보칼수 업써!)

오프닝부터 007의 미션 받는 장면 오마주, 이후 오프닝에서난 놈놈놈 오프닝 오마주, 이후 그 당시 블록버스터식 예고편 편집 등등. 콘셉트에 맞추어 재밌는 소스들을 가져와 재배열했다. 발견 덩어리들이었다.


그저 그런 오마주 덩어리가 될 수 있던 발견덩어리들은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 자막'이라는 발명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게 되었다. 지금 봐도 재밌는 저 자막들은 어떻게 하는 거지.

아무리 봐도 김태호 PD가 쓸 수 있는 자막이 아닌 것 같다. 부하 PD 중에 또라이 PD님이 있던 건가.... 쨋든 지금 봐도 재밌다.

저 때 저 자막들을 보는 충격은 유튜브에서 술먹방하는 연예인들을 보는 급의 충격이었겠지...?

쨌든 굉장히 새롭다는 뜻이다.


난 산업 스파이 PD가 되겠어. 좋은 것들만 쏙쏙 빼와서, 내가 잘 쓸 수 있게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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