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렇게 번번이 무너질 때마다, 급할 때 꺼내볼 수 있는 지침서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사는 걸 종종 그만두고 싶은 나에게,
어쩌면 비슷하게 느낄 누군가에게도 해주고픈
별거 아닌 말을몇 자 적어보았다.
*자살 충동 : 전형적인 PMS / PMDD (월경 전 불쾌장애) 증상 중 하나
'내가 왜 살지' 싶을 때
인간은 왜 사는가, 그걸 알아내려고 공부한 사람들이 다 철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도 평생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고작 내가 평생 고민하고 머리 써본 들 그 답을 알아낼 수 있겠나.
존재에는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왜 사는가'라는 질문의 끝은 결국 자살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자기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다들 이왕 태어난 김에 사는 거다. 그러므로 '왜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맞고, 더 생산적인 길이다.
결국, 이미 태어난 것 자체로 삶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남은 삶은 어떻게 보면 그저 잘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다. 이왕이면 재밌게. (조물주도 그걸 바라지 않을까?)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
사람이 늘 행복할 수는 없다. 언제나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귀하다기보단 당연하게 여겨지듯, 언제나 행복만 가득하다면 우리는 행복이란 감정을 인식조차 못 했을 것이다.
1등을 하고, 부자가 된다면 행복할까? 그건 성취할 때의 '기분 좋음'이지 그것이 행복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오히려 그 과정에서 느낀 고통이 더 클 수도 있지 않을까. 행복은 궁극적인 목적도 될 수도, 영원할 수도 없다. 모두가 같은 결과로 행복해하지 않듯,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기도 하다.
명심할 것.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다. 삶을 그렇게 간단하게 나눌 수 있을 리가. 그저 평소와 같은 오늘을 살다가 어느새 하나둘 쌓이거나, 아니면 간혹 피어나곤 하는 '좋은 느낌'. 그것의 낱개, 또는 총합. 그것이 행복이다. 오히려 삶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어야 상대적으로 행복할 때도 온다. 어차피 행복은 때 되면 알아서 오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행복 강박을 버리기로 하자.
인생이 재미없게 느껴질 때
견뎌야만 지나가는 시기가 있다. 농번기가 있으면 농한기가 있고 간빙기를 지나면 빙하기가 온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이유로 인생이 '노잼'이 된 게 아니라, 그저 재미있던 시기를 지났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시기도 온 거다.
이 시기가 잔인한 건, 지름길도 배속 버튼도 없다. 달리 방법이 없고 그냥 사춘기처럼 반드시 겪어야 지나가는 거다. 그러니 내 인생에 또 다른 재미가 찾아오기 전까지 휴식을 주는 시기라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거 하자. 그러다 보면 지나가고, 머지않아 힘껏 달리고 싶은 시기도 올 거다.
삶이 재미가 없다는 건 크게 힘들거나 슬픈 일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다르게 보면 지금이 편안하고 태평성대한 시기라는걸, 그래서 오히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기란 것만 잊지 말기.
반복되는 일상이 질릴 때
뭐든 준비가 되어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알아채고 잡을 수 있다. 우린 그 '준비된 상태'를 위해 늘 조금씩 비슷한 하루를 굴리는 것이다. 책 『바깥은 여름』속 한 구절처럼,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되는 거다.
오늘도 일하고, 운동하고, 공부하지만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을 충실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언젠가 더 나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다. '까마득한 미래에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좋은 환경'을 위해.
그리고 하나 더, '똑같은 하루'라는 건 없다. 지구가 생긴 후에, 한 번도 같은 날씨였던 적이 없었다. 나의 하루도 마찬가지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그걸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일상을 하루마다 기록하고 돌아봐야 한다.
계속되는 자기검열에 괴로울 때
내가 실수하기 전에도, 실수하고 나서도. 지구는 요만큼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상적인 실수나 행동에 집착해서 일일이 잘했는지 못했는지 평가하지 말자. 어차피 생각해봤자 답이 안 나온다. 그리고 앞으로도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작은 실수라면, 바로잡을 '다음 번'이 또 온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만큼의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라면, '다음에는 더 나은 대처를 해보자~'라며 가볍게 넘기는 게 내 정신 건강과 멘탈에 가장 좋을 것이다. 생각이 길수록 용기는 짧아진다. 많은 생각보단 그냥 묵묵히 반복하며 더 발전된 시간들을 겹겹히 쌓아가다 보면, 만회할 기회는 저절로 따라오게 될 거다.
나 자신이 한없이 못나 보일 때
살아간다는 건, 자기 자신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나에게 새로울 것도 없고, 실망할 것도 없다. 싫으나 좋으나 나 자신은 이렇게 태어났다. 약간 무능한 것도, 마냥 쿨하지 못한 것도 나다.
어차피 나는 나를 못 떠난다. 그래서 나 자신을 싫어하면 나만 괴롭다. 나조차 나를 혐오한다면 어떤 이가 나를 좋아해줄 수 있을까. 어느 유튜버의 말처럼, 어쩌면 자기애는 지능이고 재능이다.
정말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진다면, 내가 이뤄놓은 것들을 한번 되돌아보자. 나의 작은 업적, 쌓아온 추억들과 크고 작은 성취들. 혹은 쌓아온 포트폴리오를 봐도 좋다.
내가 못난 건지, 잘난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점수를 매길 수도 없고 자격증처럼 누가 공인해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내가 나를 인정해주면 된다.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다고. 내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에게 인정 받자.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실망할 때
올림픽에 나간 모든 선수에게 다 좋은 결과가 올 수는 없다. 당연히 모두가 다 잘될 수 없고, 때론 노력도 배신한다. 때론 잘 되고 때론 망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이 지구에는 80억 개나 있다.
결과를 내든 못 내든 나는 나다. 특정 성과 또는 실패 하나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존재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땐 불행한 것 같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다행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게 삶이다.
아쉬운 성과, 나쁜 인연도 결과적으로 다 역할을 한다. 그런 일들이 삶에 있어서, 좋음이 좋음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한 살 한 살, 나이 드는 게 겁날 때
젊은 화가는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을 가장 잘 그릴 수 있을 테고, 나이가 들면 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을 폭넓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더 현명하기 위해 건너가야 할 다음 스텝이 존재하는 거다.
소설 <은교>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너의 젊음이 너희가 잘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이 우리의 늙음도 우리가 잘못해서 받은 벌이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쁨이자 재미고 축복이랬다. 특히 자신의 젊음을 남김없이 알차게 써서 다 소진시킨 사람들이 그렇다고 했다. 늘 바쁘게 살고, 여기저기 다니며 어린 날의 실수도 맘껏 저질러본 사람들은 나이를 겁 없이 먹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젊은 날의 내 모습을 잃을까 두렵다면, 밖에 한 번이라도 더 나가자. 뭐라도 채워 넣으며 살자. 가서 맘껏 흑역사를 만들자. 과거에 저지른 것들이 부끄러워지면서 그걸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나이로 다가올 테니.
인간관계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자취를 시작할 무렵엔 누구나 '혼자서도 잘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그러나 나중엔 알게 된다. 행복한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걸. 같이 했을 때 기쁨은 또 다른 영역이고, 더 커지기도 한다는 걸.
세상 돌아가는 걸 가장 빠르고 손쉽게 파악하는 방법은 '사람과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 변화와 트렌드를 대충이라도 따라가고, 삶에 적당한 환기를 주는 것. 물론 나가기 싫은 약속도 있겠지만 그냥 '한층 젊어지러 간다', '사회생활 감 익히러 간다' 생각해보자.
생각해보면 사람은 사람 손에 자라 사람에게 삶을 배우고 사람 때문에 성장해간다. 여느 인생 선배님들의 말처럼 결국에는 '사람은 사람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존재구나'라는 걸 깨닫는 날이 오겠지.
지나간 과거에 갇혀있을 때
그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다운 일을 했고 나다운 선택을 한 거다. 그리고 벌어질 사건은 아무리 막으려해도 벌어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형태로.
모든 사건, 사고, 사람들은 내가 필요한 무언가를 계속 배워나가기 위해 내 인생의 시점에서 단계별로 존재하는 거다. 이 사건은 이때 나타나서 나에게 이런 걸 가르쳐주고, 그러다 종결됨으로써 내가 배워야 하는 것들이 또 끝나고. 나에게 필요한 기회는 언젠가 알아서 다시 나에게 온다. 그러니 억지로 무언갈 되돌리려고 하지 말자. 그저 묵묵히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