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이야기
<집행과 벌금 독촉 버전 3. 침묵으로 30분을 버틸 때>
뚜루루 – 뚜루루 -
미납자 : 여보세요
나 : 여보세요. 김침묵 선생님 맞으세요?
미납자 : 그런데요, 어딥니까?
나 : 네~ 여기는 00검찰청 집행과입니다. 다름 아니라, 벌금 100만 원이 아직 납부되지 않으셔서 전화드렸습니다.
미납자 : 아이고오오오. 선생님. 제가 벌금을 안 내려고 안 낸 것이 아니고요, 제 이야기 좀 들어보이소.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 하는 외식 한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우리 서방님 왠지 바람을 비우는 것 같아 그 여자한테 찾아가 욕 몇 마디 한 것이 이렇게 벌금으로.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마지막 한마디 그 말은 나를 사랑한다고, 돌아올 당신은 아니지만 진실을 말해줘요. 날 울리지 말아요.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검찰청은 너무합니다~ (10분째 에헤라디야. - 지오디 어머님께 + 김수희 너무합니다.)
나 : 아, 선생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제가 사건이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100만 원을 안 내셔서 지금 지명수배가 되었...
미납자 : 아이이고오오오오오. 선생님. 제 심정이 어떤 줄 아십니까. 지금 그 벌금이 문제가 아니라, 창내고져, 창내고져, 이 내 가슴에 창내고져. 고모장지 셰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배목걸새 크나큰 장도리로 뚝닥 박아 이내가슴에 창내고져. 잇다금 답답할 제면 여닫져 볼까 해서예. 아이고오. 이대로 고마 콱 디질랍니다. (15분째. 답답함에 가슴에 창을 내고 싶다고 한 조선후기 사설시조)
나 : 그러니까 답답하신 건 알겠지만, 벌금이 미납이...
미납자 :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사랑을 믿었었는데, 발등을 찍혔네, 그래 너 그래 너 야 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20분째. 영탁.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아무 말 대잔치)
나 : 선생님.. 그. 벌금....
미납자 : 아따 시방 이때까지 내 얘기 뭐 들었소. 나 참. 마음대로 해부러야. (뚝)
차라리 욕을 듣는 것이 낫다. 이렇게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다른 시공간으로 차원 이동을 하는 느낌이다. 이건 백 프로 나의 패배이다. 벌금 독촉은 해보지도 못하고, 30분 넘게 사연만 듣다가 전화가 끊기니까. 30분 동안 내가 한 말은 “여보세요”와 “어, 그, 저, 으, 벌, 미납” 이런 옹알이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