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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영 Jul 16. 2020

검찰청 집행과의 벌금 이야기

사건 이야기

  법원에서 어떤 사건이 판결이 나면 그 기록들은 다시 검찰청 집행과로 보내진다. 말 그대로 형을 집행하는 것이다. 집행과는 재산형과 자유형으로 나뉘는데, 재산형집행의 가장 큰 업무범위는 벌금 징수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못을 하면 대부분 징역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데, 웬만한 생활 속 범죄는 벌금형이 많다. 음주운전, 모욕, 상해, 전자금융거래법위반(남에게 통장 넘기는 것), 식품위생법위반(무허가 식당 운영),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위반(무보험 운행), 성매매 등 대부분은 벌금으로 마무리된다. 액수는 50만 원부터 1000만 원 이상까지 다양하다.


  벌금이 확정 나면 일반적으로 보름간격으로 4번의 납부고지서가 집으로 발송된다. 첫 번째는 가납납부안내문, 두 번째는 가납독촉안내문, 세 번째는 본납납부안내문, 마지막 네 번째는 본납독촉안내문이다. 네 번째 고지서를 받고도 납부되지 않으면 전국에 지명수배되며, 통장압류(사용정지) 등의 조치가 처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지로용지는 반드시 납부자가 받아 볼 수 있도록 등기로 발송된다.


  가납은 말 그대로 가납. 미리 납부할 수 있는 기간으로 보면 되는데, ‘벌금이 이만큼 확정될 예정이니 돈을 미리미리 준비하셔서 납부하세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이때는 가상계좌를 통한 현금납부만 가능하다. 본납은 '본격적인 납부의 기간'이다. 이때부터 카드결제가 가능하며, 벌금을 납부할 형편이 안 되는 취약계층은 분납(할부) 신청이나 사회봉사(벌금만큼 일하는 것) 신청이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 가납 기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2달의 기한을 넘기고도 최종 납부일까지 완납이 되지 않으면 즉시 지명수배 명단에 올라가게 된다. (옛날 검찰청에 일하기 전 나는 지명수배란 포스터에 살인 강간 정도의 강력범만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소소한 벌금을 내지 않거나, 피의자 조사를 위한 경찰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재판에 나가지 않는 등 이런 것들도 모두 경찰의 지명수배 전산에 올라가게 되는 거였다.) 지명수배 상태로 신호위반 따위를 해서 경찰에 걸리거나 하면, 즉시 완납을 해야 하고, 완납이 되지 않으면 벌금 금액에 비례하여 노역장에 유치된다. 즉 액수만큼 구치소에 있게 되는 것이다.


  한겨울에 이런 일도 있었다. 노숙인으로 추정되는 벌금이 200만 원 정도 있는 피의자였다.

납부자 : “여보시오, 제가 벌금이 200만 원이 나왔다는데 날도 춥고, 제가 낼 돈도 없고 한데 바로 구치소 들어갔다 나오면 안 되겠습니까?”
나 : 음... 선생님. 지금 아직 납부기한이 1달 반이나 더 남으셨어요. 그때까지 돈이 마련이 힘드세요? 형편 어려우시면 분납도 가능하고, 사회봉사로 대체도 가능하세요.
납부자 : 일도 끊기고, 날도 춥고, 당장 밥 사 먹을 돈도 없지. 나 바로 구치소 가고 싶은데.
나 : 근데 지금 바로는 못 가고 1달 반 더 있어야 갈 수 있어요.
납부자 : 아니 왜 구치소를 바로 못가? 
나 : 납부기한이 남아있어서...
납부자 : 아니 그럼 구치소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나 : 대략 2월 30일쯤 납부기한 끝나니까 그때 아무 경찰서나 가셔서 벌금 안 냈다고 자수하시면 구치소 갈 수 있어요.
납부자 : 아니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그러다 겨울 다 지나가겠는데. 어차피 벌금도 못 내고, 갈 데도 없으니까 그냥 지금 구치소 보내줘~~. 구치소. 구치소.
무한반복.  “구치소에 보내달라” – “납부기한 남아 있어 안 된다.”


  간혹 이렇게 구치소를 간절히 원하는 피의자도 있다. 무작정 찾아와서 벌금 좀 깎아 달라는 피의자, 벌금을 갚기 위해 아는 후배들 삥 뜯다가(갈취하다가) 다시 벌금을 맡는 피의자, 벌금이 한 천만 원쯤 됐는데 어린이 용돈 저금하듯이 오천 원씩 만원씩 내면서 얼마 남았냐고 기대에 차 물어보는 피의자 등 별별 경우가 다 있다. 그래서 신용카드로 벌금을 납부할 때는 반드시 카드 명의자가 오게끔 한다. 동생이 사고 치고 혹시나 누나 카드 훔쳐서 몰래 벌금을 낼까 봐.



  입사하고 처음 배치받은 곳이 집행과였다. 나는 고지서를 보내고 나면 전화받는 게 주 업무였는데 생각보다 민원전화가 꽤 재미있었다. 납부 고지서가 발송될 때 벌금 납부안내 문자도 함께 발송이 되는데, 발송이라는 버튼을 누르면 딱 5초 후부터 사무실 전화기가 동시에 울리기 시작한다. 단순 문의부터, 우는 사람, 화내는 사람, 떼쓰는 사람, 협박하는 사람, 슬픈 사연 읊는 사람, 욕하는 사람, 사과하는 사람, 폰 번호 바뀌었다는 사람까지 정말 다양하게 전화가 온다. 민원전화를 즐기는 나를 변태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지나고 보면 나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 듣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참고로 지금은 1301 통합 콜센터로 바뀌어서 민원전화가 많이 줄었다. 

검찰청의 모든 문의 전화는 1301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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