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짜리 훔친 사람이 나쁜가, 오천 원짜리 훔친 사람이 나쁜가.
이곳에 일을 하면서 보이는 것은 언제나 진실이지만, 그 진실이 본질의 전체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다. 그리고 진실은 어제까지만 해도 정답이다가, 느닷없이 오늘은 오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그런 뉴스가 있었다. - 옛날에도 이런 뉴스는 많았다.
코로나로 생계가 어려워진 40대 A씨는 식료품을 훔치다 걸리게 되었고, (빵이었는지 계란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뉴스를 검색하니 비슷한 절도범이 많아서 확인이 어려움) 어쨌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 뉴스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몇 십억씩 사기를 친 사람들은 집행유예면서 왜 계란 하나에 1년 6개월 징역이냐!” 불합리하다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람이 계란을 훔친 것은 진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전과가 있고, 어떠한 사람인지까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결론은 A씨는 전과가 있었고, 다른 범죄들도 있었는데 그 계란 덕분에 그 사람이 검거된 것이었다.
이런 뉴스도 있었다.
너무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장애인 이야기이다. 절도였지만 선처뿐만 아니라, 딱한 사정에 전국에서 온정이 배달되었고, 댓글도 훈훈하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자의 딱한 사정을 들은 P회사에서 그 장애인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였다는 뉴스가 짤막하게 보도되었고, 그때부터 악플이 엄청 달렸다. <5만 원 훔쳐서 정규직이면 나도 10만 원 훔치고 대기업 갈래요.> 이런 댓글.
나는 검사님도 판사님도 아니고, 오히려 이런 뉴스에 댓글을 다는 필부에 가깝다. 옛날 같으면 첫 번째 뉴스에는 “앗 1년 6개월 너무해요.” 따위의 댓글에 동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일하면서부터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1년 6개월을 받을 만큼 나쁜 짓을 했을지도 몰라.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적으로는 그 P사는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제 그 사람은 생계형 범죄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 그 사람이 또 절도를 행한다면 중죄를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될 테니까.
하루에도 10,000원 이하의 소액을 훔쳐서 기소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식당에 갔다가 식당 앞마당에 예쁘게 피어있는 꽃모종을 절취하는 할아버지. 아파트 앞에 물기를 말리려고 놔둔 발판을 당연하게 트럭에 싣고 가는 아저씨. 폐지 줍는 할머니가 집 앞에 배달된 택배를 폐지인 줄 알고 들고 갔다가, 내용물은 버리고 박스만 내다 파는 경우. 마트에 가서 아이들 먹이려고 양념소스를 계산하지 않았다는 아줌마. 올리브영에서 호기심으로 아이라인을 훔쳤다고 고백하는 청소년. 어디까지 벌을 해야 하고, 어디까지 봐줘야 하는지 그 기준은 참 어렵다. 한 번은 실수라고 용서할 수 있지만 두 번째부터는 과연 용서를 하는 것이 맞을까? 첫 번째 용서는 어디까지 진행될 수 있는가.
생계형 절도와 습관형 절도와 그냥 나쁜 절도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슈퍼에서 빵을 하나 훔쳤으면 생계형이고, 빵 가격의 돈을 훔치면 나쁜 절도일까? 남의 택배를 가로채면 나쁜 절도이고, 폐지 줍는 할머니가 폐지인 줄 알고 박스를 들고 갔다면 생계형인 걸까?
상식적인 건, “꽃을 너무 예쁘게 키웠는데 한 포기만 좀 얻어 갈 수 있을까요?”, “혹시 이 발판은 버리는 건가요?”, “우리 아이에게 도둑질은 나쁜 거라고 했으니 이 양념 소스는 내려놔야겠다.”, “총각, 내가 폐지인 줄 알고 박스를 들고 갔는데 내용물이 새 것인 것 같아 다시 들고 왔소. 미안하오.”, “갖고는 싶지만 돈이 없으니 참아야지.” 이것이다.
슈퍼에서 빵 하나를 훔쳤다. 그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무전취식을 했으며,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협박을 일삼았는지, 얼마든지 공장이든 배달이든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하루하루 놀며 건달처럼 보냈는지 기록을 보지 않으면 모른다.
단면만 보지 않기. 이제 뉴스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저게 다인가? 내가 함부로 동정해도 되는 사건일까"
만 원을 훔친 사람이 오천 원을 훔친 사람보다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상식적인 우리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