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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영 Aug 12. 2020

검찰청 실무관의 어머니도 당했다. 보이스피싱

사건이야기 - 흔한 보이스피싱

  작년, 어머니는 안마의자가 몹시 갖고 싶으셨다.

  “바”회사부터 “코”회사, “휴”회사 등 각종 제품을 비교 분석하며 신중에 신중을 더해 골랐다. 장가 간 아들과 함께 사는 딸에게 안마의자 선물을 요청하셨지만 거절당했고, 며칠 후 어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본인의 신용카드로 6개월 할부 코회사의 안마의자를 구매하셨다. 


  그로부터 몇 주 후 어머니 휴대폰에는 한통의 문자가 도착하였다.


휴회사 안마의자
주문번호: 098291
1,590,000원 결제완료
문의:02-830-8414


  어머니는 몹시 감동받았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아들이 나를 위해 고민하다 뒤늦게 사줬구나 싶어 가족들 단톡방에 얼른 글을 올리셨다. 위 문자를 캡처해서 올리며 “고맙다 아들아~.  그런데 선영이가 이야기 안 하던? 벌써 내가 먼저 사서 집에 배송까지 왔다. 이건 내가 고객센터 전화해서 반품을 시킬게” 


  오전 11시. 이렇게 보이스피싱은 시작되었다.


  이상함을 느낀 가족들은 돌아가며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화는 계속 통화 중. 

5분 뒤에 해도 통화중

10분 뒤에 해도 통화중

20분 뒤에 해도 통화중

30분 뒤에 해도 통화중


  11시 50쯤 어머니는 단톡에 글을 하나 올리셨다.


“내 계좌가 도용이 되어서 결제가 잘못되었단다. 고객센터에서 경찰에 신고해줬고, 경찰이랑 통화하니까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인 사건이란다~ 돈 빠지기 전에 신고 접수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대~”


  카톡을 보자마자 식구들이 돌아가며 전화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여전히 통화중이셨다. 가족들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보이스피싱 같으니 전화를 끊으라는 메시지도 어머니는 읽지 않으셨다. 곧 점심시간이 되었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어머니가 일하는 회사로 전화를 하여, 어렵사리 어머니와 통화가 되었다.



“어머니, 왜 전화가 자꾸 통화 중이에요? 지금 그 문자와 전화 모두 보이스피싱이에요. 끊으세요. 휴회사 홈페이지에도 사기문자 조심하라고 공지 떠 있어요. 지금도 계속 그 검사님이 연락 오죠? 사기예요! 그리고 엄마, 공무원은 점심시간에 일을 하지 않아요."


어머니는 믿지 않았다. 


 “걱정마라. 검사님이 잘 수사해주신단다. ”

  연세에 비해 어플도 잘 깔고 신고도 잘한다며 칭찬도 받은 어머니. “우리은행에는 곗돈 600만 원이 있고요, 국민은행에는 450만 원, 700만 원... 이렇게 통장에 돈이 있어요. 돈을 인출하면 확인해주신다고요? 아이고, 고생 많으시네예. 우리 딸도 검찰청에서 일해서 가깝게 있었으면 직접 감사인사라도 드렸을 텐데. “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어머니 휴대폰은 더 이상 통화중 상태가 아닌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멘트가 나왔다. 그러다 회사 전화로 다시 어렵게 연락이 된 어머니가 하는 말.


“선영아, 내 전화기가 이상하다. 아까 검사님이랑 통화하는데 갑자기 먹통이 되더니 폰이 안 켜져. ”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사기꾼은 안마의자를 구매했다는 스미싱 문자를 보내 고객센터로 전화를 유도한다. 고객센터에서는 ‘계좌가 도용당한 것 같은데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해드릴까요?’라고 친절하게 묻는다. 피해자는 반신반의하며 신고해달라고 해놓고 무심하게 전화를 끊는다. (이때까지는 아무런 피해가 없으므로 심드렁하다.)

  그러나 잠시 후 112 번호로 사이버경찰청에서 전화가 온다. (사칭기관인데 발신번호가 112이다.) 이때부터는 조금 진지해진다. 휴회사 안마의자에서 사이버수사대 신고 접수를 받고 전화를 한다며 본인 확인을 한다는 명목으로 이름과 주민번호를 물어본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진지해진다. 

  그 후 아무래도 도용당한 게 맞는 것 같으니 정식으로 사건 접수를 하라고 한다. 어떻게 접수를 해야 하는 거냐고 질문을 하면, 방문접수는 절차가 오래 걸리니, 문자를 하나 보내줄 테니 그 링크로 들어가 사이버경찰서 어플을 깔아서 온라인 신고 접수를 하면 된다고 한다.

  그 어플을 까는 순간 그 휴대폰은 좀비폰이 된다. 피해자의 카톡, 문자 등 휴대전화의 모든 것을 원격으로 제어한다. 어머니 휴대폰이 계속 통화중이었던 것도 그놈들이 조작한 것이었는데, 계속 통화중 상태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과의 연락을 차단한 것이었다.

  다행히 딸이 검찰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놈들은 타깃이 애매했던지 가차 없이 어머니 휴대폰을 초기화시켜 버렸다. 휴대폰이 먹통이 되고 나서야 어머니는 사기인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분한 마음에 인근 지구대로 달려가 내가 보이스피싱을 당할 했다고 신고했더니 심드렁한 경찰관님의 한마디.

“아주머니, 피해있으세요? 피해 없으면 그거 신고해봤자 별 소득 없어요. 아무런 단서 없이 잡지도 못하고요. 그래도 꼭 신고하고 싶으시면, 여기 말고 경찰서로 가보세요. 여기는 접수받는 곳 아니에요.”


먹통이 된 휴대폰은 다행히도 삼O 서비스센터에서 일부 복구를 해 주었다.


   이렇게 어머니의 보이스피싱 사건은 진정서 접수도 되지 않고 끝이 났으며, 접수가 되었다고 한들 성명불상-사기미수-기소중지로 A4 용지만 아까울 뻔 하긴 했다.  며칠 뒤 스미싱문자와 불법 어플을 활용한 동일수법으로 최저금액 3400만 원부터 최고 금액 1억까지 털린 억울한 진정서들이 밀려왔지만, 대부분의 이런 사건은 총책이 해외에 있어 잡지 못한다. 그저 이런 나쁜 놈들 길가다 고통스럽게 급사하라고 저주를 퍼부을 수밖에.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은 유념하자.

하나. 대부분의 공무원은 점심시간에 열정적으로 일하지 않는다. (공무원에게 점심은 매우 중요한 존재로 점심시간에 전화하는걸 극도의 실례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벌금미납자로 유치장에 있는 분들에게도 다 점심을 시켜준다. )

. 수사관은 다짜고짜 전화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 처음은 우편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내며, 검거가 아닌 이상 집으로 잘 찾아가지 않는다.

셋. 검찰 고객센터 1301로 전화하여 사기꾼이 불러주는 사건번호 확인은 공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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