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이모저모
먼저, 글을 쓰는 빈도가 상당히 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큰 이유는 아니고... 이전 글에서 얘기했듯이 필자가 보통 글을 쓰는 시간대는 새벽 2~4시
혼자 방에서 맥주나 막걸리를 한 두잔 마신 뒤 기분좋은 취기에 빠져 글을 작성하거나
다같이 술을 마시고 와서... 잠들기 아쉬운 마음에 글을 썼었다.
다만, 당분간 혼술을 주 1회 이하로 줄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저번 1주일동안 급하게 작성해야하는 과제 제안서의 담당을 맡아
금요일 오후 10시 반까지 부랴부랴 작성을 마친 후,
교수님께는 조금이라도 더 늦게까지 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 11시 48분 예약 메일을 작성해둔 뒤
늘 마시는 나의 알코올 메이트, 연구실 H 후배와 술을 마셨다.
이 친구랑만 마시면 왜 그렇게 주량이 강해질까
주량이 강해지는 것 보다는 객기에 취하는 것 같긴 한데,
다른 친구들과 같이 1차로 소주, 2차로 둘이 단골 바를 간 뒤
3차로 자취방으로 돌격해... 위스키를 마시던 중 기억이 끊겼다.
입에서 나는 단내를 느끼며 잠에서 깼을 땐, 내 눈앞에 후배의 발이 보였고
서로 교차로 침대에서 오후 3시까지 뻗어서 잤다는 사실과 함께 어마어마한 숙취가 몰려왔었다..
그러나 숙취를 없애기는 커녕, 6시에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과 술자리가 있었고...
그 중 한명은 1년만에, 서울에서 와서, 심지어 본인의 첫 연애 썰을 풀게 되는 자리라
부득이하게 자리에 참여했고...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지만 상당한 체력을 썼다.
문제는 새벽 2시, 집에 도착해서부터 발생했다.
다음날 결혼식을 위해 아침 8시에 일어나야 했던 필자는, 지체없이 바로 자리에 누웠지만
이례적으로 속이 메스꺼웠고... 앞 뒤로 새벽 5시까지 모든 수분을 배출했다...
간신히 일어나 대전역까지 도착했지만, 숙취라고 말하기에는 더 심각한
몸 상태 자체가 너무 좋지 않음을 느꼈고...
최대한 노력했다는 사실이라도 전달하고자, 대전역 사진과 함께 장문의 사과,
환불한 기차비를 추가로 축의금에 보탠 후 집으로 와서 기절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몸을 굴려대는데, 여태 버텨준 내 신체가 용할 따름이다
아무튼, 이제 내년이면 30이라는 현실에 순응하기로 하며
언젠가 줄여야 함을 알고 있던, 이 혼술 주기를 최대한 줄이기로 결심한지 정확히 1주일 차다
뭐, 쓸데없는 서론이 길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술 없이도 글을 쓰다 보면
습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이뻐한다" 라는 속담을 한번씩은 들어보지 않았는가?
나는 이 속담에 상당한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끼 고슴도치는 귀엽다.
생각보다 큰 고슴도치도 귀엽고, 냄새를 배제하면 상당히 사랑스러운 동물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어미라면, 필자도 귀여운 새끼들이 어찌 귀엽지 않겠는가
모성애는 포유류의 본능이고, 아직 미혼에 반려동물도 기르지 않는 나지만
후에 딸을 낳으면 정말 온 세상을 손에 쥐어주기 위해 노력할 모습이 보인다.
(아들은 알아서 잘 클거라 믿는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 자식이 상당히 맘에 들지 않는다.
혼외 자식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고....
대학원생의 자식이 무엇이겠는가
그렇다. 나는 지금 작성 중인 내 논문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필자는 현재 박사 4학기 차이며,
정확히 2년 전인 석사 4학기 마지막에 논문 게재에 성공한 적이 있다.
그 연구는 내 석사 생활의 모든것이자, 나에게 박사의 꿈을 안겨주었던 내 아들이었지만
희한하게도 처음에는 너무나 좋아보였던 데이터, 이뻐보였던 피규어들이
논문을 submit하는 마지막까지도 계속 걸렸다.
"아 왜 통계 데이터가 부족한 것 같지"
"하 이거 이동도가 너무 낮은거같은데"
"쓰읍... 이게 대체 무슨 문장이지.."
온갖 생각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수정했지만... 결국 맘에 들지 않은 채로 논문을 submit 했고,
다행히 publish 되었다.
그 논문을 마무리 하는 당시에, 박사가 확정이었기에, 새로운 B 주제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자그마치 2년동안 지속한 B 연구를 마무리 하고 현재 논문을 작성중에 있다.
그러나...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타 논문들과 비교할 때, 뚜렷한 정량적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그림이 이쁘냐.... 공저자 후배에게 그림을 부탁하지만,
내 미적 감각 부족으로 인해 깔쌈한 요청 사항을 주지도 못한다.
매커니즘을 설명하고자 1년동안 개고생을 해서, 여러번 교차 검증을 했지만
가장 잘 아는 나이기에,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반복되며 논문을 쓰기 무서워지고 있다.
분명 첫 논문 마무리 당시에, B 주제는 너무 이뻤는데
마무리 과정에서 본 B 주제는 허점 투성이 같다.
아직 부모가 되지 않아서 그런가? 부모가 본 자식은 다 이런 느낌일까?
잘 됐으면 좋겠지만, 아직 세상에 내놓기에는 너무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고
차라리 내가 고쳐서, 타인에게는 어떻게든 잘 보이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필자는 잔소리를 많이 듣지는 않았지만, 영어를 가르치시던 엄마에게 직접 수업을 들으며
참 많이 싸우고, 결국 중학생 당시 영어 포기 선언 및 70점 이하의 성적을 받아오기도 했는데
그때 엄마는 속이 타는걸 어떻게 참았는가 싶다.
이제는 정말 세상에 내보내야 할 때가 되었는데
아직 내 자식은 너무 부족한 게 많아보인다.
그래도 고등학교 이후부터, 아예 잔소리를 하지 않고 믿어준 우리 부모님처럼
나도 최대한 의심하지 않고 글부터 마무리 짓고
세상에 내보내야 리젝을 받든..리비전을 받든 하며 논문이 발전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다.
진짜 뜬금없는 소리인데, 필자는 평소에 게임 운이 없다.
최근 한달동안 모바일 마비노기를 열심히 했는데,
캐릭터당 한 번 뿐인 기회를, 두 캐릭터 모두 7개의 아이템 중, 유일하게 쓰지 못하는 2개에 당첨됐다.
뭐, 인생사 새옹지마. 액땜. 비슷한 말이다.
쓰레기 같은 게임 운을 제물로, 작성 중인 내 자식이 운 좋게 더 좋은 저널에 게재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내일도 열심히 자식을 다듬어 봐야겠다.
어쨌든 지금은 내가 B 주제의 아빠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