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광복절에 결혼했다. 조국의 해방을 기념하는 그날, 인생의 영원한 전쟁이 시작되리라는 역설을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결혼이 전쟁임을 깨달은 건 신혼 초였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잠자리에 들기 전 에어컨을 켰는데 땀을 식힐 새도 없이 남편이 너무 춥다며 에어컨을 꺼버렸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그 밤에 남편은 오리털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잠이 들었다. 나는 침대 옆에 기대앉아 쉴 새 없이 부채질을 해댔지만 끓어오르는 열은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냉장고 앞에 주저앉아 냉장고 문을 열었다. 김치 냄새가 섞인 하얀 냉기가 흘러나오는데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급기야는 냉장고 안에 얼굴을 들이밀고 땀을 식혔다. 그 순간 내 모습이 어찌나 초라한지 글썽, 눈물이 맺혔다. 그때였을 것이다. 냉장고의 냉기보다 서늘한 공포가 목덜미에 스며든 것은.
'저런 사람이랑 어떻게 평생을 같이 살아?'
눈물 어린 눈가에 냉장실의 누런 불빛이 가혹한 절망감으로 깜빡였다. 나는 혼자 소리 죽여 울었다.
전쟁의 계기는 늘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지난 결혼생활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자가 사고하는 방식과 몸에 밴 습관을 상대에게 수긍시키느라 하루에도 수차례 치열한 전투와 맥 빠지는 휴전을 반복해왔다
화가 나면 한 번에 폭발해버리는 나와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입을 다물어버리는 남편. 긴팔 폴라 티셔츠에 목 토시를 하고 솜이불을 덮고 자는 남편과 그 모습을 보는 것조차 숨이 막히는 나. 외출할 때는 언제든 후다닥 나설 준비가 되는 나와 최소한 30분 이상의 준비시간이 필요한 남편.
달라도 어찌 이렇게나 다른가 싶은 우리는 여전히 부부다.
냉장고 앞에서 느꼈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고, 친구였다면 이미 절교를 선언했을 만큼 정도를 넘어선 다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함께인 까닭은 뭘까.
그건, 딱 2만큼의 사랑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 결혼을 결심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서약'한다. 부부는 사랑으로 시작되어 약속으로 맺어진 관계다. 사랑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사람과 함께 살 결심을 하겠으며 약속의 구속이 아니라면 무슨 수로 그 관계를 지켜나가겠는가? 최초의 인간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 두 사람이 부부로서 관계를 시작하게 하신 신의 계획은 참으로 현명했다.
나와 남편은 지독하게 서로의 다름을 탓해왔지만 사실 그것은 사랑의 약속 안에서 어떻게든 함께 맞추어가려는 몸부림과 다름없었다.
차마 약속을 깨뜨릴 수는 없는 관계. 그렇다고 모든 걸 포용할 만큼 너그러움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관계. 그래서 쉴 새 없이 싸우지만 결국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관계. 그게 우리 부부의 역학관계였다.
나는 지금도 부지런히 빨고 털어서 이불장에 고이 넣어둔 겨울이불을 한 여름날 꺼내 덮는 남편을 보며 '도대체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라고 소리치고 싶다. 하지만 나 역시 그에게 삼복더위의 겨울이불처럼 답답할 때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어코 마음을 다잡는다. 아니, 사실 세 번 정도는 참아내고 두 번은 그렇지 못하다.
약속을 깨뜨릴 용기가 49라면 다름을 참아내는 인내는 51이랄까. 양팔저울의 기울기를 결정하는 건 2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전쟁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데 충분한 수치다.
올해가 결혼 8년 차. 지금껏 우리를 지탱해 온건 거룩하고 대단한 사랑이 아니었다. 어김없이 찾아온 더위만큼이나 우리의 다름은 서로를 이토록 지치게 만들지만, 그래도 다행 아닌가. 여전히 딱, 2만큼은 사랑하고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