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겠습니다. 나는 정말 이기적인 아이였나요?

밝히기 두려웠던 과거를 과감히 꺼내보며, 무영.

by 비무영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참 싫었다. 남들은 내려가도 올라가는데 나는 항상 내려가기만 하는 것 같아서. 항상 끝없이 내려가기만 하는 나의 삶은 인생조차도 아니라고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이야기가 참 싫었다.


왜 나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건지, 왜 나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건지, 왜 나는 왜 나는 부모의 제대로 된 사랑조차 받지 못하는 건지. 왜 나만 항상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피해주는 삶이 너무나 싫었다. 그렇기에 항상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살려고 애썼다. 나는 정직하게 살고 싶었다. 가난이, 그 가난이 주는 박탈감이 너무 싫었다. 나는 가난을 숨겨야 했고, 어머니의 특별한 종교를 함께 믿어야 하는 상황을 숨겨야 했고, 아버지가 화를 참지 못하면 집을 나가신다는 것도, 아버지가 집을 나가면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가 받을 때까지 전화해야 하는 나의 삶은 숨겨야 하는, 숨길 수밖에 없는 거짓된 삶이 너무 싫었다.


세상은 숨긴다고 그걸 순진하게 믿어주지 않았다. 나는 결국 가난한 집의 아이였고, 나는 부반장이 되어도 반에 햄버거 하나 못 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그런 부반장인 나를 참으로 싫어하셨다. 담임선생님께서 싫어하시니 자연스럽게도, 또 나는 그런 가난이 티 나는 것이 싫어 괜한 자존심을 친구들에게 보이는 이기적인 아이였기에 나는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나를 가장 따돌리던 남자아이는 내게 왕따라고 웃으며 손가락질했다. 나는 울고 싶었지만, 어머니께서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이야기에 내가 당당해지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당당하지 않기에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니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되짚어보고 그 남자아이에게 나는 왕따가 맞다고 당당하게 말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당황할 것이라고.


나는 그 남자아이가 또다시 왕따라고 손가락질했을 때, “그래 맞아, 나는 왕따야.”라고 답했다. 울고 싶었지만 그러면 당당해 보이지 않으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똑바로 두 눈을 보고 말했다. 그 남자아이는 반 아이들에게 “호연이가 왕따라고 인정했다”라며 웃었다. 반 아이들은 우리 둘을 외면했다. 그 남자아이는 머쓱해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반 아이들 모두가 나를 비웃는 상황은 없었다. 내가 겁내던 상황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해를 지날 때까지도 여전히 왕따였다.


나는 초등학교의 대부분을 왕따나 은따로 살았다. 나는 점점 사람이 무서워졌다. 나는 사람을 피했다.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에 흔히 모범생 무리라고 부르는 무리에 낄 수 있었다. 행복했다. 처음으로 종교 사람의 자녀가 아닌 친구가 생겼다. 어머니께 자랑스럽게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포교를 원하셨다. 그러면 우리 가족에게 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싫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말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미성년자를 향한 일방적인 포교가 옳지 않다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매일 내게 종교 지도자의 어록이 써진 메시지 카드나 종교 행사 초대장 따위를 주셨다. 주기만 하면 복이 쌓이니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말은 잘 다녀오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기적이게도 그 말을 믿었다. 친구들에게 피해를 줌이 맞는데도 그렇게라도 우리 가족에게, 아니 나에게 행복이 오길 바랬다. 나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왜냐하면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니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기적인 사람은 마땅히 피해야 하니까.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내려가는 길목이 있으면, 올라가는 길목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중학생 때 동네에 있던 청소년센터에서 진행하는 독서토론 모임에 가입할 수 있었다. 가입비는 없었다. 활동비도 나라에서 주었다. 나는 무료로 다양한 문화생활과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만큼은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담당 선생님께 인정받아 친구들의 투표를 받고 모임의 대표가 되었다. 언젠가 독서토론 모임에서 활동할 행사를 투표했었다. 친구들에게선 참여한다거나 안 한다는 대답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다. 나는 나의 책임감을 친구들에게 강요했다. 그저 취미활동이었을 뿐인데, 나는 이상하게 책임감이 강했고 사실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그 당시 대부분의 친구들은 학원에 찌드는 삶이었고, 언제 생길지 모르는 보충수업의 존재를 간과하며 무작정 하지 않는다든가, 무작정 한다든가 의 대답을 하는 것이 친구들에게는 책임감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은 침묵으로 그들의 책임을 다했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는 학원 스케줄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머니께서는 공교육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방과 후로 대신했다. 방과 후는 보충수업이 없었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무지렁이나 할법한 변명으로 안 한다는 이야기조차 못 하는 친구들이 나는 참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는 감사하는 법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답변을 강요했다. 당연하게도 행사일이 다가올 때쯤에 친구들에게는 다양한 사정이 생겼다. 행사를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센터 회의에서 그 행사들에 참여 취소한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야 했다. 꽤 지난 일이라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담당 선생님께서는 내가 그 회의에 참여해 내가 취합을 너무 과도하게 진행했다는 이야기를 해줬으면 했다. 나는 담당 선생님께서 준 타임라인을 맞추었던 것이었는데 내가 과도하게 취합했다는 이야기를 해줬으면 하는 통화가 왔었던 걸로 기억난다. 나는 나에게 책임을 돌리는 어른이 싫었다.


나는 그날로 독서토론 모임을 그만두었다. 나는 친구들의 믿음을 버렸다. 단지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그곳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날 믿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모두 받아들여 준 나의 친구들을 무참히 버렸다. 그리고 나를 믿어준 담당 선생님조차도 무참히 버렸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이 글을 꽤 오래전에 쓰고 잊었다. 내 이야기를 불쌍한 척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고, 불쌍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나 이기적일지라도 이곳에 묻고 싶습니다. 아니, 죄송하게도 이곳에 묻습니다.


나는 정말 이기적인 아이였습니까? 니면 이기적일 수 밖에 없던 아이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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