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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Feb 13. 2023

삼둥이의 한글 정복기 Ⅰ

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삼둥이들은>

  삼둥이는 그러니까…교육에 대한 관심이 (아직은) 거의 없는 부모 밑에서 컸다. 자라온 환경은 시골의 면이고, 다음 달이면 학교를 가는데 아직 TV채널도 못 틀고, 유튜브도 TV로 연결해 부모가 골라주는 것만 본다. 삼둥이가 미디어에 익숙지 않은 것은 사실상 부모의 어떤 신념이나 교육적인 요인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그러니까 사실은 그들은 셋이라 심심할 틈이 없다. 미디어를 찾을 만큼 심심한적이 없어서인 것이다. 그러나 조금 방만한 부모 때문에 게임을 해보지 않고 유튜브를 적게 볼뿐 TV는 많이 보는 편이므로 미디어를 본인들이 직접 다루지 못할 뿐 미디어를 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또래에 비해 순진한 편이다.     


<희미한 전설>

  엄마의 기억에 의하면 나는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그냥 어느 날 보니 한글을 알고 있었다는 희미한 전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인 삼둥이들도, 아니 삼둥이 중에 한명이라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변 동료의 아이들도 한글을 정식으로 가르치지 않고, 글씨 몇 개를 알려주고, 읽어주고 하니 알게 되었다고. 그 나이가 보통 여섯 살 쯤. 나로서는 현대의 괴담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동료들의 공통적인 얘기는 어느 순간 아이가 한글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      


  그렇다. 언젠가는 한글에 관심을 가지리라. 천둥벌거숭이들도 언젠가는 엄마, 이거 어떻게 읽어? 하는 지식 갈구의 순간이 오리라.     


  어느 날은 막내가 책 제목을 줄줄 읽는 것이었다. 책 제목은 ‘동글마녀의 동글동글 목걸이’. 아, 드디어 저 아이의 전설의 순간이 왔구나. 저 아이는 이미 엄마도 모르게 한글을 알고 있었던 것이야. 이벤트의 여왕 같으니라구! 그래서 잽싸게 다른 책들의 제목을 읽어보라고 했지만, 막내는 몰라아~~~~ 하면서 해맑음을 뽐내며 도망가버렸다. 아, 해맑음도 사람을 화나게 하는구나. 막내는 자주 읽었던 그 책 제목을 외운 것 뿐이었다. 푸지직 식어가는 전설의 불꽃.   

  

<서로에게 배울 게 없어, 그저 해맑아.>

  다른 쌍둥이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음을 미리 말한다. 우리 삼둥이는 사실 서로에게 교육적으로 배울 것이 없다. 내가 희미한 전설처럼 한글을 알았던 것은 두 살 터울의 언니 덕분일 가능성이 크다. 어릴 때 언니는 아이템풀인가 하는 학습지를 매일 했는데 아마 한글에 관심 있었던 내가 어깨너머로 그걸 배우지 않았을까. 아니 근데 그래도 나는 일단 한글에 관심은 있었던 거잖아!


  어쨌든 삼둥이의 경우 키우면서 신체상의 발달-뒤집기, 배밀이, 기기, 걷기-등은 무사히 미션 클리어 했지만, 이후 말은 또래보다 (걱정될 정도는 아닌 정도로) 늦었다. 나의 협소한 데이터로는 터울이 있는 오빠, 언니, 누나, 형이 있는 아이들이 말이 빨랐다.      


  자기보다 수준이 높은-그렇다고 어른은 아닌-대상을 보면서 말이 늘고, 한글을 배우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일단 한, 두 살이 많은 형제가 있으면 배움을 촉발할 교재도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경우도 있고, 한글을 줄줄 읽는 형제에 대해 부러움이나 시기, 질투를 느낄 기회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삼둥이들은 서로 큰오빠, 작은오빠, 여동생의 관계이기는 하나 터울이 1분이니, 서로의 수준이 습자지 한 장 차이이다. 그들은 그저, 해맑다. 참 아름다운 일이다.     


<한글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시기?>

  그래서 결국 그들은! 내가 한글을 가르치기 전에 한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셋 다! 끝끝내! 그렇다. 이런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작년 4월, 아이들이 7살이었을 때다. 


<한글의 시작은 코로나 확진>

  그 와중에 유행은 곧잘 따르는 우리 가족. 코로나가 유행하던 작년 4월, 금요일 막내 확진, 이틀 뒤 일요일 아빠, 첫째, 둘째 확진, 그 다음 주 월요일 나 확진으로, 원치 않는(?) 9일간의 합숙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 그 시절 일이 많아 온 가족이 확진될 때 같이 확진되길 얼마나 바랐던가. 아이들이 일주일 격리된 후에, 내가 걸려서 2주를 사무실을 못 나갈까 봐 가슴 졸였다. 다행히 연속적인 확진으로 기뻐했다. 망할 코로나.     


  그렇다. 원치 않는 합숙 기간 우린 뭘 해야 할 것인가. 한글이다! 9일의 칩거 끝에 문을 열고 나가면! 우리는 이제 더이상 까막눈이 아닐 것이다!     


<교재는?>

  교재는 기탄교육연구소에서 나온 <한글떼기>라는 교재로 정했다. 1~10과정까지 열권으로 구성된 책으로, 학습지 선생님으로 다년간 근무한 언니의 추천 교재였다. 뭐든지 딱히 알아보지 않고 대충 사는 성격이다. 다른 건 알아보지도 않고 이 교재로 정했다. 한 달에 한 권씩 열 달 동안 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는 책인데, 대체 그걸 누가 지키겠는가. 누가 지키긴 내가 지키지. 첫째, 막내는 10과정, 둘째는 9과정으로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엄마의 상태>

  일단 엄마인 나는 교육에 관심이 없다기 보다는 느긋한 성격이라고 좋게 얘기해 두기로 하자. 그런 성격답게 아이들이 7살인데 한글에 관심이 없다는 현실에 조금도 걱정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마흔이 넘은 내가 혼자 한글을 깨쳤다는 희미한 전설이 내 인생에 뭔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내 옆의 직장동료가 다섯 살에 한글을 깨쳤다던가, 내 앞의 동료가 9살이 되어서야 한글을 겨우 깨쳤다는 거, 그게 현재 시점에서 뭐 얼마나 그의 인생에 영향을 주겠는가. ‘저는 다섯 살에 한글을 깨쳤어요.’ 라고 마흔살의 누군가가 말하면 그가 받을 것이 환호성이겠는가 코웃음이지. 어쩌면 나는 코로나 확진이 아니었다면 하반기에나 한글 좀 가르쳐볼까나 했을 성도 싶다.      


  그러나 여기서 놀랍게도 나는 국어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이며, 더 놀랍게도 임용고사를 한 번, 두 번, 세 번…. 휴, 그만 세자. 수도 없이 떨어진 사람이다. 수도 없이 떨어진 끝에 끝내 붙진 못 했지만, 언어, 문학, 독서 뭐 그런 거에 관심이 많다는 말이다.     


  그리고 미션을 클리어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며(혼자만의 미션 클리어를 좋아할 뿐 승부욕은 옅다.), 느긋한 편(게으른 편 아님….)이고, 성실하다.      


  이런 엄마와 해맑은 삼둥이의 한글 정복기! 하루에 10분 남짓(그렇게 짧게?), 10개월 간(그렇게 길게?)의 기록이다. 띨띨하진 않지만, 똘똘하지도 않은 평범한 아이들의 한글 공부 기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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