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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Feb 20. 2023

삼둥이의 한글 정복기 Ⅱ

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그래요, 평범이라고 해둡시다.>

  삼둥이의 한글 정복기라는 제목이라면 이들이 다섯 살 정도에(모두가 와우~할 나이에) 한글을 뗐다는 비장한 내용이어야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2016년생이며 평범한 7살에 한글을 시작했다. 평범이라고 해줘요~ 모두들 5, 6살에 뗐다고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이 글이 한글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궁금한 양육자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글은 흑, 슬프게도 아님을, 그저 한글을 이런 식으로 공부한 아이들도 있음을 기록하는 어떤 엄마의 넋두리임을 알아주시라.     


<공부! 하시겠습니까?>

  일단 아이들이 공부를 하겠는가?라는 의문. 7살이 될 동안 단 1분의 교육적인 것도 가르치지 않은 아이들, 주구장창 TV만 보고 산 아이들, TV에서 영어가 나오면 동시에 “엄마, 영어 싫어!” 외치는 아이들, “우리는 책을 싫어해!” 당당히 말하는 아이들. 말하다 보니 속이 쓰리네. 그런 아이들이 공부를 하자고 해서 할까. 나는 일단 그것에 대해 의문 자체를 두지 않았다. 그냥 이것은 앞으로 시작될 긴 학업의 시작에서 루틴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공부는 원래 힘든 것, 재미없는 것, 근데 매일 조금씩 해야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후 애들에게 누누이 한 말이다. 그건 내가 느낀 것이기도 하다. 한글을 가르칠 수 있는 재미있는 방법도 많이 있을 테지만, 그냥 정통의 방법으로 한글을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비장한 마음으로 이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더 알아보기 귀찮아서일 수도. 오호호.     


  이런 결정에는 그 원래 힘들고, 재미없는 걸, 나도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공부 시작 이후로 현재까지 내가 무척 아프거나(아아, 나는 진짜 거의 안 아픈 사람이다.), 아이들이 무척 아프거나(오, 다행히도 용가리 통뼈들이라 크게 아픈 일이 없다.) 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매일 10분 정도 공부를 했다. 나 원래 은은하게 독한 사람이라구!      


  물론 더 좋은 커리큘럼으로 체계적으로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양육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워킹맘인 나에게는 아이들 세 명을 매일 십 분씩 가르친다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1:1? 1:3?>

  일단 강의식으로 셋을 두고 공부를 가르치는 방법은 고려하지 못 했다. 일단 공부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애들이라, 그런 식으로 진행하다간 도떼기시장이 되어 나의 화만 증폭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중에 공부를 진행하면서 보니, 점점 개인 간 수준차가 커져서 강의식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내 체력을 위해서라도 강의식이 필요할 성도 싶다.     


<한 놈만 잡으면 돼!>

  놀랍게도 한 놈만 잡으면 됐다. 한 놈만 공부를 하자고 구슬리고 공부를 시키고 나면,  남은 두 아이는 안 하기도 민구스러워 한달까. 그래서 셋 다 절대 안 할래! 부르짖어도 하나만 잡고 ‘헤이, 헤이~ 처음에 하면 짧게 끝내줄 건데~~~.’하고 구슬려서 일단 공부를 시작하게 만들면, 셋 다 공부를 다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공부를 셋 다 안 한 날은 있어도, 한 명만 하거나, 두 명만 하거나 한 날은 없다. 안 하면 안 했지, 하면 셋 다 하는 것이다. 대부분 착하고, 싫은 걸 얼른 끝내버리는 걸 좋아하는 첫째가 먼저 한다. 첫째는 얼마전 심경을 고백했다. “엄마, 하기 싫은 건 먼저 해버리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어.”


  물론, 이 아이들은(우리 애들만 이런가요?) 올웨이즈, 매일 공부를 하기 싫어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물론 하기 싫지, 그러나 해야 되는 거!를 똑같은 노래처럼 반복하는 엄마 때문에 그냥 아, 원래 해야 되는 건가? 하고 한다.     


<그래서 화는 안 나세요?>

  그래요, 화가 나네요. 자주 화가 나네요. 자식들을 직접 가르치다니 독하고, 또 독하다라는 말 많이 들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화가 날 때가 많은 일이더라.      


  다행인 점 몇 가지. 일단, 나는 화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두 번째, 이건 다행인가요, 불행인가요. 아이들 탄생 이후부터 지금까지 늘 깨닫는 점이지만, 난 소위 모성애라는 것이 많이 없는 인간이다(그런 인간에게 세쌍둥이라니, 삼신할머니는 장난꾸러기!). 그것의 장점은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보고, 또 아주 큰 애정이 없으므로 큰 화도 안 생긴다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화가 난다면, 이건 나의 비법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내 아이들이 아니고, 내가 돈을 받고 가르치는 학생들이라고 생각한다. 쟨 내 자식이 아니야. 그러면 그 애에게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별로 없고, 아휴, 이거 문밖에 있는 엄마한테 얼마나 가르쳤다고 티나게 가르쳐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타고나게 적은 모성애와 오랜 수련의 콜라보가 있어야 하는 심도 있는 스킬이다.      


이제 마지막 편은 아이들 별 공부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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