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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r 06. 2023

그러니까 또 나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로군요

-삼둥이 어린이집 졸업식

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나의 자식들, 삼둥쓰들이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이 어린이집은 3살 2학기 때부터 다닌 어린이집으로, 무려 4년 6개월을 다녔다. 본인들 인생의 3분의 2를 보낸 곳이다. 졸업식 자체보다 졸업식 이후 초등학교 입학까지 일주일간 애들을 데리고 있을 생각에 걱정부터 앞선 엄마다. 이 어린이집은 시골 지역의 어린이집으로 이번에 13명의 어린이들이 졸업한다. 거의 3살부터 같이 지낸 아기들이라, 같이 졸업하는 친구들 사진도 5년 동안 봐왔다. 삼둥이만큼 친숙한 귀염둥이 깜찍이 아이들이다.      


  어린이집을 들어서자 1층에 졸업생들의 사진이 진열되어 있다. 학사모를 쓴 그들의 모습은 진지하다! 난 한 번에 세 명의 박사를 배출한 장한 어머니 같은 심정이 되었다.      


  삼둥이들은 이렇다 할 사건 없이 무던하게 4년 6개월의 어린이집 생활을 했다. 그 무던함의 원인은 일단 아이들이 무던했고, 작은 사건을 대수롭지 않아 하는 나의 덕도 컸다. 오호호. 그리고 아이들을 잘 돌봐 주신 선생님들의 몫이 컸을 것이다. 이 나라의 어린이집 선생님들 모두 파이팅! 내 자식도 힘겨워하는 나는 죽었다 깨도 못 할 직업이다.     


  졸업식에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총출동했다. 막내는 이모할머니, 이모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까지 부르자고 했지만, 이것은 그녀의 결혼식이 아니다. 언니한테 삼둥이 어린이집 졸업식에 참석하라고 하면, 나는 오랜만에 쌍욕을 들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남색 가운과 남색 빵모자를 쓰고 입장한다. 진행하시는 부원장님이 입장하는 아이들 각각의 장래희망과 가장 좋아하는 것을 말씀해주신다. 정면에 보이는 화면에 아이들 얼굴 과 그들의 장래희망, 가장 좋아하는 것이 뜬다. 삼둥쓰 첫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야캉이(애착인형 이름으로 이것일 줄 알았다), 둘째는 뱀(너무나 예상했던 바다.), 막내는 아빠(당연히 예상했던 바다.). 역시나 나는 인형에도 지고, 뱀한테도 졌다. 승패의 결과가 너무나 명확해 아빠와는 싸워볼 투지도 없다.   

  

  그중에 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네네치킨’이어서 모두가 웃었다. 네네치킨은 이 지역의 유일한 치킨 프랜차이즈이다! 그들의 부모는 치킨에 졌다. 그들의 부모와 패배의 아픔을 나누고 싶다.     


  이어 각각의 어린이에게 상이 수여됐다. 첫째는 지혜로운 어린이 상, 둘째는 이야기박사 상, 막내는 아름다움 표현 상을 받았다. 여기서 우리 가족을 웃게 만든 건 둘째였다. 상 받는 어린이들은 이름을 부르면 ‘네.’하고 일어서서 상을 받으러 간다. 우리 둘째는 평소 집에서 삼둥이 말 안듣기 콘테스트가 열린다면 부동의 1위를, 매년, 매달, 매일 차지할 녀석이다. 반항심이 낭낭하며, 엉뚱하다. 근데 수상자로 호명되자 마치 군인과 같은 태도로 반듯하게 일어나 ‘네엡!!!!’하면서 크게 답하고 단상에 올랐다. 분명히 말하지만 ‘네.’가 아니라 ‘네엡!!!!’이었다. 의젓한 어린이인척 하는 모습에 가족 모두가 웃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개사한 노래이다. 아이들을 수식하는 말 네 글자와 이름을 넣어 개사한 것이다. 척척박사 김땡땡~, 미소천사 최땡땡~ 이런 식이다. 첫째는 곤충박사, 둘째는 인기 최고, 셋째는 예쁜 화가라는 수식을 얻었다. 한 친구의 수식어가 ‘양보하는’이었는데, 내가 엄마였음 좀 속상했을 수식어였다. 내 자식을 대표하는 네 글자가 ‘양보하는’이라니.      


  집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대사도 열심히들 했다.      


  뽀롱뽀롱 개나리가 피던 나알~~(너네는 8월 입소였어!)

  엄마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온 게 벌써 엊그제 같은데에~~ (너네 엊그제가 뭔지 모르잖아.)     


  후배들의 노래도 이어졌다. 정말! 딱 한명만 제대로 부르고, 모두는 그 한 명이 멱살을 잡아서 끌려오는 노래였다. 이어지는 후배들의 답사(?)에서도 노래에서 혼자 모두를 이끌었던 잔다르크 후배만이 똘망지게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어버버하는 아기들도 좋다. 그 아이들의 정처를 찾지 못하는 눈빛이 너무 귀엽다!!     


  원장님의 말씀! 아, 여기서 이어지는 나의 1차 당황! 원장선생님이 갑자기 우시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졸업식에 처음 참석해 보는 나로서는 이런 분위기 조금 충격적이다. 눈물이 나서 준비해온 걸 읽지 못 하시겠다는 원장님. 네에? 그, 그, 그 정도세요? 나는 분명 감성적인 인간인데, 이 와중에 머릿속으로 드는 생각이란 것은. 회식 때 과장님이랑 팀장님이 건배사를 하시며 운다면 나는 정말 싫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선생님들도 원장선생님이 저러는 거 좀 싫지 않으세요? 생각하며 담임선생님을 보자 이어지는 나의 2차 당황. 담임선생님도 이미 얼굴이 빨개지도록 우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내 옆자리에서 계속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시는 시어머니의 기척. 아, 이러지 마세요, 어머니. 나의 3차 당황을 일으킨 시어머니의 눈물. 그리고 슬쩍 돌아보니 몇몇 우는 졸업생의 가족들. 아아, 그렇군요. 이런 분위기군요. 어떡하지. 나는 눈물이 안 나. 그냥 슬쩍슬쩍 돌아보면서 씩 웃는 삼둥이가 웃기고, 국민의례를 한다고 오른손을 가슴에 척 붙이는 게 웃기기만 한데.      


  나에게 울음을 강요한 사람은 물론 없지만 왠지 감성이 메마른, 모성애가 없는(아이고, 들켰네.) 걸로 보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일부러 울겠나.


  졸업식이 끝나고, 지인들에게 조사를 했다. 아이 유치원, 어린이집 졸업식에 울었는가. 아아, 내 주변에는 감성적인 그대들만 있나요? 모두들 울었단다.


- 너무 펑펑 울었어.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감정이 메말랐어?

- 나는 안 울었는데, 남편이 너무 많이 울어서 말렸어.

- 우리 애가 그렇게 울더라. 눈이 퉁퉁 붓도록.

- 우리 애 친구는 졸업식 연습을 못 하고, 옆 교실에 혼자 가 있었대. 연습할 때마다 울어서.

- 나는 졸업식장 가서 작은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울었어.     

  

  남편과의 인터뷰.      

- 자네는 어제 울었는가? 

- (시선을 회피하며) 안 울었어….

- 진짜인가?

- 안 울었어. 그냥 눈만 조금 따끔따끔거렸어….   

 

  그렇다. 삼둥이는 메마른 감정을 가진 엄마와, 눈만 따끔거린 아빠와, 눈물이 주룩주룩 나신 할머니와, 생에 처음 그런 곳에 와보신 할아버지와 졸업식을 마쳤다.      


  졸업한 2016년 아가들 파이팅! 형아반에서 이제 다시 신입생들이 됐구나, 뽀롱뽀롱 개나리가 핀 그 날에 즐겁게 뛰어놀자. 잘 커주어 고맙구나, 흑흑(급하게 우는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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