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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r 20. 2023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삼둥이의 드라마 시청

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삼둥쓰들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드라마 시청이다. 같이 살았던 할아버지의 영향이다. 그들은 매일 저녁 7시 50분에 KBS2에서 방영되는 일일드라마 시청 후, 8시 30분에 KBS1에서 방영되는 일일드라마 시청 후 취침한다. 주말에는 KBS2에서 오후 8시에 방영하는 드라마를 반드시 보고 주말을 마무리한다. 그것은 그들의 오랜 루틴이며, 드라마를 집중해서 보는 날도 있고, 드라마를 틀어놓고 드라마 시청과 상관없이 쌩쌩 노는 날도 있다.     


  특히 막내의 몰입은 엄청나다. 할아버지 옆에서 누워 진지하게 등장인물에 대해 얘기하고, 자기가 못 본 내용에 대해 묻고, 할아버지가 전 날 못 봤다면 줄거리도 이야기해준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 그녀의 최애작은 작년에 방영됐던 ‘신사와 아가씨’. 여주인공 단단이를 아주 좋아해서, ‘엄마, 박선생 또 울어!’, 자신이 이뻐 보이는 날은 ‘엄마, 나 오늘 박선생 같네.’, 엄마가 이뻐 보이는 날은 ‘엄마, 박선생 같다.’ 등의 말을 많이 했다.     

  일일드라마는 2016년생이 보기에 대체로 자극적이다. 아니다. 40대인 내가 봐도 그렇지. 일일드라마에서 끝내 사랑 받지 못 한 여자 악역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물이 담긴 욕조로 들어가 몸을 서서히 가라앉혔을 때, 막내는 ‘저 이모 왜 옷도 안 벗고 목욕을 하는 거야!’ 묻는다. 저번에는 남자주인공이 괴한에게 각목으로 머리를 맞았다. 그는 그 며칠 전에도 습격을 당했었다.     


  몇 주 전에는 여자주인공 두 명이 서로를 심하게 비난하며 싸우는 장면이 나왔다. 같이 보다 내가 무심코 ‘얘들아, 저 이모 두 명은 실제로는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닐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던 아이들이 웃으면서 말한다. 

  “엄마, 무슨 소리야. 저 이모들 맨날 싸우고 안 친해.”

  “저 짧은 치마 입은 이모가 맨날 얘기하는 것도 몰래 들어. 나쁜 이모야.”

  뭐, 뭐라구?? 그러니까 우리 삼둥이는 지금까지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이 연기라는 거, 그걸 몰랐던 거다.      

  도대체 우리 애들은 어디까지 순진하며, 어디까지, 어떤 상황까지 다 얘기해줘야 하는 건가. 8살 보통의 아이들은 드라마가 허구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그게 평범한 건가. 모르겠다. 애를 처음 키우는데, 그게 세 명이라 정신없는 와중에, 사실 나 자신도 좀 어리바리하니 뭘 알겄는가.     


  “아가들아, 아가들아. 들어보아라. 드라마에서 나오는 내용은 전부 가짜야. 꾸며낸 얘기야. 그리고 저 이모들, 삼촌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두 연기자야. 연기라는 건 진짜인 것처럼 하는 건데 사실은 진짜는 아니야. 봐봐, 저 이모들은 저렇게 싸우지만, 실제로는 둘이서 친할 수도 있어. 그리고 저 할머니가 저 삼촌 진짜 엄마는 아니야.”     


  아, 왜죠? 왜 다들 그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거죠? 엄마 보다 드라마를 믿는 건가요?     

  여러번의 설명으로 그들은 네모난 TV 속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님을 간신히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몇 주 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걸 의심하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밥을 먹는 장면. 

  “엄마! 저 밥! 저거 진짜 밥이야?”

  “아, 밥이 설마 가짜겠니. 밥은 진짜지.”

  “엄마! 저 식탁은 진짜야?”

  “식탁까지 가짜일 거 있겠니….”     

  여주인공이 코트를 입고 걷고 있다.

  “엄마! 저 옷 진짜야?”

  “아, 물론 옷은 진짜지.”     

  가족들이 집에서 오순도순 얘기하고 있다.

  “엄마, 저 집 진짜야?”

  “집이 가짜겠니!! 아아, 그래 집은 가짜지! 따로 만들어 놓은 가짜 집이야.”     

  
  명탐정 삼둥이 나셨다. 그들은 지금 모든 걸 의심하고 있다. 드라마 속 머리카락 한 올, 밥 풀 하나까지 다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드라마 관계자들이여 조심하라. 여섯 개의 눈동자가 당신들의 드라마를 흰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이제 허구라는 세계를 알았다. 순진에서 한 발짝 또 나가고 있는 거겠지.     


  (아, 이런 그들이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작년 연말 그들은 놀랄만한 소식을 듣는데…. 

  “엄마, 슬이가 그러는데 산타할아버지는 없대. 선물은 엄마, 아빠가 준비하는 거래.” 

  “오잉, 슬이 착한 일 많이 못 해서 산타할아버지가 걔네 집 안 갔나 보다. 으이구, 너네도    조심해!” 

  “오오오오, 그런 거구나!” 

  아직은 쬐끔 더 순진의 세계에 있으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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