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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30. 2023

삼둥이와 책

  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요즘 들어 생긴 삼둥이의 취미는 도서관을 가는 것이다! 써놓고도 뿌듯하다! 도서관이라니! 그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자기들이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사실이다. 나는 부모는 자녀의 얼굴이다라는 생각으로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대단한 핑계)! 그러나 내 책을 읽기 바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목도 아프고, 재미도 없고 해서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어주지 않았다(솔직한 이유). 나중에는 ‘엄마, 제발 하나만 읽어줘.’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뚝심의 엄마는 그것도 잘 안 들어주거나, 선심 쓰듯 한 권씩만 읽어주었다. 비루한 변명을 들자면 한 권씩만 읽어줘도 세 권이요, 두 권씩 읽어주면 여섯 권인, 성대결절에 바싹 다가서는 상황인 것이다. 아휴, 아이가 클수록 책 한 권의 분량도 왜 그렇게 길어지는지.


  여기에서 그들의 사랑인 아빠가 읽어주면 되지 않냐라는 의견. 그들의 판단은 냉엄하다. 책은 엄마가 읽어야 하고, 좀비놀이(그게 뭔지 알고 싶지 않다.)와 감옥놀이(역시 알고 싶지 않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좀비놀이와 더불어 우리 집의 대표 몸놀이다.)는 아빠와 해야 제맛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엄마는 드릅게 재미없게 놀아주고, 아빠는 재미없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더 어린시절에 할아버지랑 책을 읽던 막내가 나를 끌고 할아버지한테 가더니 말했다. 


  “엄마, 책 읽어 봐. 할아버지 잘 들어 봐. 엄마처럼 이렇게 읽어.”


  이 녀석아, 이 녀석아. 저 할아버지는 너한테나 할아버지지 나한테는 시아버지란다. 허허허.


  그들의 책 취향은 질기고 한결 같다. 일단 남자인 첫째와 둘째는 무조건 자연관찰이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첫째는 곤충, 특히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등 강한 곤충들이 나오는 책을 좋아한다. 둘째도 늘푸른 소나무처럼 언제나 파충류이다. 뱀에서 공룡까지. 


  동물과 곤충의 책을 다룬 책들은 대개의 구성이 그렇다.


  알을 낳는다-> 부화한다, 또는 변태의 과정을 거친다-> 열심히 큰다->짝짓기를 한다->다시 알을 낳는다.


  그래서 책을 읽다 짝짓기를 하면, 아아, 거의 읽어가는군 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책을 읽어주는 내가 너무나 타고난 문과적 인간이라 자연관찰책이 너무너무 싫다는 것이다. 뱀의 부화 과정, 뱀의 성장 과정, 뱀이 뭔가 큰 알을 먹고 배가 볼록한 사진, 아아, 너무나 적응이 안 된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파충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시절은 없었다. 


  반면 막내는 지극히 스토리의 세계를 좋아한다. 커가면서 성별에 대한 의식 없이 똑같이 셋에게 블록이 주어지고, 자연관찰 책이 주어졌지만, 여아인 막내는 블록도 좋아하지 않고, 자연관찰책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셋 모두 서로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어깨너머로 가끔 보기 때문에, 너무 책을 편식하지 않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아, 일단 별로 책을 안 좋아한다고요! 책을 일단 많이 봐야 책을 편식하나 하는 걱정도 하죠! 


  다섯 살 무렵부터 한 권당 책의 분량은 길어지기 시작했다. 라푼젤을 읽으면 나는 라푼젤이 자기가 공주라는 것을 깨닫기 전부터 목이 아파지기 시작한다. 거북이 책을 읽으면 거북이가 알을 낳을 때 내가 낳는 것도 아니면서 같이 목이 아프기 시작한다.


  그래서 과감하게 편집자가 되어 몰래몰래 책을 줄여 읽었다. 자연관찰 책이라면 사진 밑에 있는 내용은 넘어간다던지, 길게 써있는 자연관찰 책의 한 면 중 한 문단만 읽는다던지, 곤충의 몸 부분을 설명한 곤충 프로필 사진을 보면 세부내용은 전혀 안 읽어준다던지 하는 비열한 방법을 쓰곤 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아이들이 글씨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점점 쓰기 어려워지고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책을 좋아할 줄 알았다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고, 내 책만 읽는 나의 오랜 변명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셋 모두 책을 좋아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도서관을 가게 된 것도 책을 읽히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아이들과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두 번째는 내가 책을 빌리고, 반납하기 위해서, 세 번째는 도서관을 가면 애들이 내가 책 읽는 걸 좀 놔둘까 싶어서. 그리고 내가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유아들이 책을 읽는 곳이 따로 있고, 그곳은 좀 소리내어 읽어도 되는 곳이라, 아이들을 풀어놓고 내 책을 보려 하지만 뭐든 내 뜻대로 된적이 있던가. 아이들이 모이 물어오듯 책을 가져오면 책을 읽어주게 되었다. 


  도서관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좋아하는 책이 여기여기야라고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첫째는 곤충, 둘째는 파충류만 쏙쏙 집어오는 것이다. 


  나는 도서관의 한구석에서 책을 주면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가 되어, 책을 주면 책의 내용을 읽어주는 주크박스가 되어 책을 나불나불 읽어대는 것이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나라고 내 자신에게 물어보면 솔직히 말하면 그러거나 말거나이다. 아주 즐거운 취미인 것은 맞지만, 누구에게나 맞고 누구에게나 좋은 취미겠는가 싶다. 그냥 나만 읽게 놔둬 주세요. 


  소곤소곤 말하는데 이상하게 더 크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아이들은 도서관으로 들어선다. 책은 안 읽어도 좋으니 멋진 책 한 권처럼 마음 속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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