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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22. 2023

별 것 아닌 포인트에 흘리는 느닷없는 눈물

삼둥이 막내의 작은 배신

  그러니까 밀키트로 나온 닭갈비떡볶이를 만들고 있었다. 날은 갑자기 더워졌고, 삼둥이는 처음 태권도 학원을 간 날이었다. TV에서 나오는 도라에몽에 아이들은 집중하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집안일에 성취감과 보람을 전혀 느끼지 못 하는 삼둥이 엄마는, 그러나 책임감은 있어 반조리된 밀키트를 어설프게 섞고 있었다. 


  밥을 다 차리고 아이들을 불렀다. 태권도 학원에서 진이 빠져 와서인지 허기가 진 아이들은 밥을 먹었다. 평소 TV를 많이 보긴 하지만 밥 먹을 때는 끈다. 미디어 제한이라기 보다는 TV를 보면서 맹하게 밥을 먹는 모습이 보기가 싫다. 아이들도 밥을 먹을 때는 TV를 끄는 건 당연히 여긴다.


  아이들이 밥을 먹기 시작하고, TV를 끄려는데 리모컨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식탁에서 몸을 틀고 TV를 보면서 밥을 먹는다. 도대체 리모컨이 보이지 않는다. 찾고 찾고 또 찾는다. TV 밑에 있는 책장 뒤로 넘어갔나 해서 책장 뒤도 보고, 쇼파 아래로 넘어갔나 해서 쇼파 밑도 본다. 거실 바닥에 깔아놓은 매트 밑에 숨었나 해서 매트도 뒤집는다. 찾고 찾고 또 찾고, 귀로 들리는 도라에몽의 목소리도 맘에 들지 않는다. 분통이 터진다. 얘들아, 리모컨 못 봤니? 입안 가득 닭갈비를 물고 고개를 젓는 아이들. 나는 스팀을 뿜으면서 찾아댄다. 


  이십 분 가까이 거실을 샅샅이 돌고, 화장실까지 가보지만 리모컨은 없다. 평소 칠칠치 못 해서 휴대폰, 차 키 등을 어디 뒀는지 기억을 못 한다. 그래서 뭐가 없어지면 내 잘못이라고 간주해버리곤 한다. 전적이 워낙 화려해서 말이다. 


  아이들이 밥을 반쯤 먹고 도라에몽이 끝났다. 막내가 말한다. “엄마, 사실 리모컨 내가 숨겼어!”


  막내는 자기만 알고 있는 비밀번호로만 열 수 있는 저금통에 리모컨을 넣어둔 것이었다. 아, 그걸 안 순간의 분노란. 막내는 도라에몽을 보기 위해 그걸 숨긴 거다. 내가 TV를 끌까 봐 숨긴 거다. 그리고 도라에몽이 끝나고 나서야 그 사실을 밝힌 거다. 그리고 내가 이십 분 가까이 열을 내며 리모컨을 찾는 걸 보면서 밥을 먹고 도라에몽을 본 것이다. 아이가 리모컨을 숨긴 것보다 엄마가 리모컨을 찾는 그 이십 분을 보고만 있었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아이에 대한 화, 짜증? 그것보다는 배신감이라는 거창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말도 안 되게 눈물이 펑펑 흘렀다.


  “너는 어떻게 엄마가 리모컨을 찾느라 힘들어 하는 걸 보고도 그럴 수가 있니?”


  눈물은 창피하게도 펑펑 흘렀고, 타고나길 맘이 여린 막내도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펑펑 흘렀다.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 그러니까 울지마.”


  그 아이가 미안하다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마음이 여린 동시에 먹성이 좋은 그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숟가락으로 닭갈비를 퍼먹고 있었다. 입가가 빨갛게 번지고 양 볼이 그득한 채로 울면서 연신 밥을 먹는 아이를 보니, 정말 숟가락으로 머리 한 대를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특히 막내는 키우면서 심정적으로 첫째, 둘째에게 미안할 정도로 어화둥둥 내 새끼하고 이뻐하는 아이인데. 


  귀여운 내 자식이니 이렇지. 만약 사회에서 내가 급한 서류를 찾는데 옆에 직원이 불안해 하는 나를 지켜보다가 내가 결국 서류를 찾지 못해 낭패를 겪고 나서, 아, 그거 사실은 내가 숨겼죠, 허허. 이런 상황 아니냐구! 


  이것은 앞으로 삼둥이에게 내가 당할 수많은 뒤통수의 전조인가요? 


  아우, 근데 난 뭘 그거 가지고 그렇게 펑펑 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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