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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Sep 25. 2023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서

하유지의 <3모둠의 용의자들>을 읽고

 내년에도 같은 반 되기 싫은 사람? 난 최은율. 이런 대화를 보게 된다면 난 어떨까. 중년이 된 나는 이런 말에 휩쓸리지 않고 담담할 수 있을까.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같은 팀원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질문에 누가 다 함께 있는 대화창에서 나를 지목한다면 나는 어떨까. 은율이는 세상이 무너져서 눈물도 안 나온다고 했지만 마흔이 넘은 나는 글쎄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 열네 살의 나였으면 통곡하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나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를 싫어한다라는 생각에 울음 항아리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알 수 없는 자학과 자책 속에 있었을 것이다.


  여기 우리의 은율이는 울지 않는다. 코를 벌름거리면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나선다. 나는 이미 이 지점부터 은율이가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직시하지 않고 무시하고 사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은율이처럼 용기내지 못 해서, 결과가 가져올 여파가 무서워서, 힘들어서, 자신이 없어서 무시했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다른 방식일 뿐일 것이다.


  은율이가 울지 않았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 않은 것은 물론 아니다. 은율이는 질문한다. 왜 나는 김민서나 이서연이 아니고 최은율일까? 왜 나는 최은율일까? 나는 이 질문이 은율이가 자신에게 한 슬프고도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나는 최은율일까? 왜 난 친구 하나 없는 최은율일까? 왜 나는 여드름이 가득한 최은율일까? 왜 나는 우수한 최민율이 아니라 덜떨어지기만 한 최은율일까?  


  은율은 이제 최은율을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어쪄면 내가 나를 싫어하는 기분, 내가 나를 싫어해도 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나선다. 현서의 전학 이후 그 누구와도 친해지려고 하지 않고, 친해지지도 못한 은율은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현서에게 쓴 메일처럼 새로운 사람들은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니다. 알고 있었지만 새롭게 알게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호수, 엘라, 진아, 민준, 찬효, 소미, 다희 그리고 은율이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은율 자신이다. 다른 친구들처럼 은율은 이 사건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고 친해진다.


  나는 스물네 살부터 서른한 살까지 백수로 지냈는데 참 많은 시간을 자신을 비웃으면서 지내다가 서른 살 즈음에 자신과 악수를 했다. 언제나 제일 보살펴줘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 언제나 제일 친한 친구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서른이 되어서야 절실히 느꼈다. 이 사실을 열네 살의 은율은 벌써 깨닫고 있는 것이다.


  최은율 탐정은 용의자들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용의자들이 평범한 얼굴 뒤에 자기만의 슬픔이 있음을 알게 되고,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그것에 연루된다. 호수의 부모님의 싸움을 듣게 되고, 엘라의 언니의 죽음을 듣고, 진아의 슬픔과 외로움에 귀 기울이고, 민준의 할머니를 찾아 나서고, 찬효와 나눠야만 했던 이야기를 드디어 나누고, 소미와 부침개를 먹고, 다희의 책상을 나른다. 


  범인은 밝혀졌다. 내년에도 같은 반 되기 싫은 사람? 난 최은율. 이 말을 한 범인은 바로 최은율 자신이었다.


  은율과 친구들은 지금 돌돌 말려서 나고 있는 새잎이다. 기지개를 펴려고 준비 중이다. 몸을 웅크렸다가 펴면 얼마나 시원할까? 그리고 돌돌 말린 잎 안에는 얼마나 많은 색색의 보물이 알알이 있을까?


  은율이 자신과 친구들에 대해 생각하며 ‘우리는 서로 싫어하지 않는다. 어쩌면 좋아한다. 좋아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은 주변 사람과 그 속의 나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소설 내내 예쁜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호수의 카톡 프사의 그림자가 엘라의 그림자가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그림자였음을, 깨달음은 그렇게 밝은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은율과 친구들은 앞으로도 수없이 상처받으며 싸울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싸움에서 자기 자신을 보듬고, 사랑하며, 애틋해 할 것이다. 은율을 싫어하는 3모둠의 용의자들 모두 혐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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