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단종문화제
올해 처음 참석한 백일장은 단종문화제 기간 중 열리는 백일장이었다. 평일에 열리는 이 대회를 위해 무려 하루의 휴가를 썼다. 운전은 휴직 중인 남편의 몫. 장소는 영월 장릉. 집에서 1시간 5분 걸리는 거리!
날씨가 역시 기가 막히고 대회가 열리는 장소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까르르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대회에 참가했나 보다. 귀여운 것들. 나의 자식들 2016년산 초2 세쌍둥이도 데리고 올 걸 그랬나라는 생각은 0.1도 들지 않았다. 아휴, 평일에 학교에 보내야지 어딜 데리고 와~~ 엄마가 잘 쓰고 갈게!
편의점에 들르겠다는 신랑. 싱글벙글 손 안에 무얼 가득 들고 온다. 먹태깡 다섯 봉지.
“자기야, 여기 편의점에 먹태깡 엄청 많어.”
그렇다. 나는 저 사람의 저런 순수함을 사랑했지. 지금은, 지금은 사, 사, 사, 좋아합니다. 술, 담배를 입에 안 대고 과자만을 입에 대는 사람이니 놔둬야지 어쩌랴. 그 때만 해도 먹태깡은 핫한 과자였다. 남편은 먹태깡이 입맛에 딱히 맞지는 않는다는데 많이 있는 걸 보니 여러 개 사고 말았단다. 그는 허니버터칩 대란 시절에도 풀방구리 생쥐 드나들 듯 가는 편의점에 허니버터칩 들어오면 연락 좀 주십쇼하고 은밀한 거래를 하던 사람이다. 나에게 2024년 영월의 특산품을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먹태깡이라 말하겠어요~
먹태깡을 들고 오는데 백일장에 참가한 아이들이 와글와글 쫑알쫑알거렸단다. “저거, 먹태깡이야!”, “맛있겠다아!” 좋겠어요. 영월 어린이들의 아이돌이 되신 거.
그나저나 백일장에서 아이들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무슨 내용을 쓰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뭘 고치느라 지우개로 박박 지우는 걸까. 잔디밭에서 깔깔대는 모습은 깜찍깜찍. 자신이 지금 쓴 시는 기억 안 나도, 친구와 깔깔댄 기억은 마음에 남을 거야. 하지만! 이것은 성인이 된 내가 보는 행복해 보이는 광경이지. 사실은 어린시절에 내가 그랬든 끌려오듯 백일장에 참가해서 머리를 쥐어뜯는 아이들도 있겠지.
그리고 와우, 왕후들이 너무나 많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게 뭔 일이여. 여기도 중전, 저기도 왕비, 저기도 마마님. 알고 보니 정순왕후 선발대회가 같은 날 열린 것이다. 곱게, 본격적으로 꾸민 그녀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이들을 8시 넘어 학교에 보내고 부랴부랴 달려온 백일장이다. 얼레벌레 글을 쓰고, 점심을 먹고 다시 아이들을 맞으러 가야할 터이다. 공원에 널부러져 앉아 시를 썼다. 남편은 차에서 먹태깡을 먹으며 놀고 있었다. 뭔가를 쓰고 남편을 불렀다. 단종문화제 여기저기를 쏘다니고 싶었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다. 장릉을 올라가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정말 백 년만에 남편 팔짱을 꼈다.
영월 가자, 장릉 올라가자, 짬뽕 먹자. 남편은 시키는데로 그래, 그래 할 뿐이다. 그래, 쟤가 원래 저런 애였지. 내가 하는 모든 말에 아무 토도 달지 않고 그래, 그래. 쟤가 저런 애라는 걸 아주 오래 잊고 있었다. 우리는 동시에 태어난 이른둥이 세 명을 키우느라 서로에 대한 가시를 거두지 못 했다. 내 인생에서 만난 최고로 유순한 남자가 우리 신랑인데 그 유순한 남자도 육아 앞에서는 바스라지고 만다.
그래서 팔짱을 끼면서 말해 주었다.
“미녀가 팔짱 껴줘서 좋겠다.”
남편은 그런 식의 말을 십 년에 걸쳐 들었기 때문에, 순순히 그래, 그래 한다. 이 평생에 걸친 가스라이팅!
백일장은, 그 결과는! 두구두구두구두구! 수상 실패!
괜찮아, 괜찮아. 아니야, 안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