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나는 백일장을 떠도는 원혼. 전생에 뭣이었기에 이렇게 백일장을 나가는 걸까요. 조선시대에 백일장에서 번번히 떨어지던 늙은 유생이었을까요. 흑흑 몰래 울면서 수염에 눈물 좀 적셨던 걸까요.
백일장을 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것도 전국으로. 통영, 부산 등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기 힘든 지역 말고는 여기저기 잘도 다닌다. 요즘에는 내 자식들 2016년산 세쌍둥이를 달고. 어린이들이 백일장을 가는 경우는 많지만 성인이 백일장을 나간다고 하면 많이 이상해하고 재밌어 한다. 실제 백일장을 가면 대학‧일반부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참석을 하는데 내 주위에는 나 말고 성인이 백일장을 가는 경우는 없었다.
백일장이 뭐가 좋은가. 그 이유는 무지 많다.
먼저 백일장은 대부분 날씨가 좋은 봄과 가을에 열린다. 백일장 날짜들은 얼마나 기막히게 잡는지 날씨가 거의 좋다. 그리고 장소는 문학관, 공원, 초등학교 등인데 대부분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앉아서 쓸 수 있는 장소이다. 눈에 초록, 초록이 많이 보인다. 백일장이 열리는 곳으로 여행 장소를 잡고 가면 오전 백일장을 참가하고 그 지역의 관광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이미 장소와 계절은 좋을데로 좋으니까.
백일장은 지역축제가 열릴 때 축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열리는 경우도 많다. 영월의 단종문화제, 옥천의 지용제 때 백일장이 함께 열린다. 백일장도 즐기고 축제도 즐기고다.
둘째, 백일장은 남녀노소 누구도 가리지 않는다. 대회 특성상 일반부만 참가 대상으로 하거나, 일반부를 제외한 어린이, 청소년만 참가하는 대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초등부, 중고등부, 대학.일반부로 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또한 초등부만 있으면 초등학생 아이를 위해 다같이 가도 되고, 일반부만 있는 대회면 가족들이 모두 와서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뛰면 된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백일장 데이트도 좋다. 나의 경우에는 연애시절 주말 데이트를 백일장 장소로 정하고 구남친이며 현남편인 신랑이 운전해서 나만 백일장에 참가하고 그 지역을 함께 여행했다. 지독히 이기적인 여자~~~
아, 혹시 나는 글을 못 써요, 너무나 창피하고 부끄러워요. 아니 무슨 상관입니까! 심사위원이랑 우리는 모르는 사이잖아요. 심사위원이 집에 차를 몰고 가면서 ‘아까, 심사할 때 봤던 경기도 무슨 시에 김어쩌구란 사람, 드럽게 글 못 쓰네.’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많은 참가자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합니까. 아니, 심사위원이 그렇게 생각하면 어때. 그러거나 말거나.
셋째, 상장과 상금을 준다. 이렇게 끌리는 이유가 있을까. 물론 잘 쓰는 소수의 사람이 받지만, 내가 그 소수가 안 되리란 법이 있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아, 이건 아닌가?
상금은 금액도 가지각색. 물론 일확천금의 기회는 안 되고, 대부분 상금을 못 타니 기름값도 안 나오지만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내가 무엇을 썼다는 것이.
그래서 마지막 이유. 백일장에 참가한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무언가 어찌 됐든 써야 한다. 그렇다. 어쨌든 뭔가가 남는다. 나는 어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잠깐 고민하고 시가 됐든 산문이 됐든 뭔가를 써서 낸다. 창작을 한다. 그것은 일상의 우리들에게, 작가가 아닌 우리들에게는 반짝이는 경험이 아닌가. 그래서 난 백일장을 간다.
다른 작은 이유들도 있다. 백일장과 같이 열리는 그리기 대회에서 아이들의 그림을 보는 것이 좋다. 무언가에 골몰한 사람들을 보는 것도. 그리고 어떤 대회는 빵을 주기도 한다! 또 왠지 시험을 보는 것 같은 상태에 놓이는 것이 좋다. 물론 진짜 시험이 아니고 시험을 보는 것 같지만 아닌 것이 좋은 것이다.
백일장은 참가 후 빠르게는 당일에 결과 발표를 하기도 하고, 늦게는 몇 주 후 결과 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유는 아닐테고 나에게 해당하는 백일장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이것도 있다. 나는 아마 승부를 겨루고 경쟁하는 걸 좀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백일장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기간이 복권을 사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처럼 조금은 들뜬 기분을 들게 하는데 그것 또한 좋다.
백일장 참가하기 외에도 나의 취미들은 사람들이 ‘아니 대체 왜?’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모든 취미에는 그것을 즐기는 놀랄 만큼 다수의 사람이 있다는 것.
이제 백일장을 가볼 준비가 됐나요. 어린 시절 문학소년소녀들이여, 다시 일어나라. 문학소년소녀가 아니라 백일장에 가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면? 아, 그럼 몇 십년간 내 안에 있던 창작의 혼을 깨우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