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제목을 생각해 본다. 백화점이 아닌 잡화점. 신상품이라야 아이가 주문해 놓은 필통 정도인 곳. 잡다하고 자잘한 느낌이면서 일상적, 생활 밀착적이다. 있어야 할 것은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느낌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슈퍼마켓 보다는 덜 세련되고, 만물상회 보다는 단촐한 동네 구판장 정도 되려나. 그래서 백화점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닐 터이다. 자전거를 타고 내 곁을 지나가는 단발머리 여자, 어깨에 맨 가방의 무게 보다 어깨가 더 처진 학생의 이야기. 잡화 같은 다양한 이야기.
이 책은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것일까. 재밌게 읽었지만 엄청난 작품성이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이 책의 인기 요인 첫 번째는 이 책이 전세대가 수용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고민을 털어놓는 대상들이 다양한 것만큼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세대 또한 다양하다. 그리고 페이지 수에 비해 읽는 속도가 빨라져서 독자에게 쉽게 많은 페이지의 책을 읽어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선물용으로 표지도 훌륭하다. 무난하고 몽글몽글하고 잔잔하고 소소하다.
그리고 이 책은 따뜻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미야 잡화점의 모습을 그려보면 늘 따뜻함이 느껴진다. 잡화점의 봄은 벚꽃이 날리며 볕이 들 것이다. 잡화점의 여름은 그늘이 있어 청량할 것이며, 가을은 쓸쓸하지 않은 고운 낙엽이 흩날릴 것이다. 겨울에 잡화점 문을 열면 난로의 열기가 빨개진 볼을 녹일 것이다. 이 책이 가진 특유의 따뜻함. 그것이 독자들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이다. 모두들 활자에서 자신들이 바라는 온기를 느끼리라.
이 책의 인물들은 그 온기를 만드는 촛불 하나하나이다. 일단 엇갈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고민에서 허우적대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맞닥뜨린 세 얼간이를 보자. 그들은 우선 그냥 도둑이 아니다. 그들은 좀도둑이다. 소심하고 큰일도 저지르지 못하는 범죄자가 되기도 모자란 인물들이다. 책의 처음 부분에 첫 번째 편지를 받고 고헤이는 말한다. “남의 편지를 마음대로 뜯어보는 건 안 좋은 일이야.” 얼씨구, 어린이집 재롱반 친구도 안 할 말을 하고 있다. 이런 모질지 못한 모지리들이 어떻게 악한 짓을 하겠는가.
고민을 상담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 역시 모질지 못 하게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그들은 뭔가 재능이 있다가 만 사람들이기도 하다. 달 토끼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직전까지의 재능만 가지고 있다. 생선 가게 뮤지션은 프로로 데뷔할 재능과 운은 없다.
이 책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엇갈리는 판타지적 요소가 있다. 이런 요소가 억지스러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그런 판타지적 요소보다 더 판타지적인 것은 인물들의 따뜻함이다. 도대체 어딜 봐도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사업의 성공으로 냉정해질뻔 했던 길을 잃은 강아지마저도 다시 따뜻함의 세계로 복귀한다. 따뜻함의 결정체인 나미야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면면히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판타지스럽게 느껴졌다.
고민상담가로서의 주인공들은 어떨까. 우선 나미야 할아버지는 따뜻함을 기본으로 한 공감과 경청의 상담가이다. 사람들이 목구멍이 턱턱 막히는 고민을 한 자, 한 자 쓰면 그 한 자, 한 자를 신중하고 깊게 들어주고 위로한다. 고민을 말하는 사람은 고민 해결의 목적뿐 아니라,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나아가서는 신세한탄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나미야 할아버지는 상대의 그 마음을 이해해 주며, 나아가 백지에 깃든 혼돈까지도 읽어내는 상담가이다.
세 얼간이는 어떤 상담가들인가. 그들은 냉철하고 직설적이며 송곳 같은 상담가이다.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며, 자신들을 배우지도 못 하고 아는 것도 없다고 여기지만 그런 것을 모르는 상담자들에게 그들은 에둘러 말하지 않고 돌직구를 날리는 상담가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연에 흥분하는 것은 그들이 사실은 엄청난 공감능력과 감정이입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담을 받은 상담자들은 어떤가. 그들에게 상담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 책의 상담자들은 상담을 받고 자신의 결정을 바꿀 무언가를 얻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책에 나온 상담자들은 결국 다 그렇게 됐을 인물들이다. 달토끼는 편지를 쓰지 않았어도 최선을 다해 올림픽 출전권을 따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생선 가게 뮤지션은 미련하게 음악을 포기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폴 레논은 물론 가족을 떠났을 것이며, 그린 리버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길을 잃은 강아지는 미래를 예언하는 편지를 받지 않았어도 현재보다 작은 규모라도 성공했을 사람이다. 그들이 받았던 것은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정이 아니라 무엇을 해도, 어떤 것을 해도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위로와 격려였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평생에 있어 따뜻한 반딧불이가 되었을 것이다.
역시 제일 부러운 것은 길을 잃은 강아지이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내가 세 얼간이에게 편지를 보내면 그들이 우유상자에 답장을 보내 주면 좋겠다. “이 편지를 꼭 믿고 행동하세요. 2023년에는 주변에 편의점이라는 곳이 많이 생긴답니다. 그 곳 중 한 곳을 2023년 8월 첫째 주에 방문하세요. 거기서 로또를 사겠다고 말하세요. 로또가 무엇인지는 그때 가면 알게 됩니다. 거기서 다음 여섯자리의 번호로 로또를 사십시오. …….”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것은 누구의 기적인가. 일단 나미야 할아버지의 기적이다. 조용히 저물어가는 일생의 끝 무렵에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 무렵, 그의 말을 들으려는 팬레터 같은 편지들이 쏟아진다. 인생의 말미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기적이리라.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은 인생이 일그러져 간다고 느낀 세 얼간이에게도 그들의 시린 이마를 위로하는 기적은 일어난다. 그리고 영원히 기억되는 명작을 만드는 기적, 제 목숨보다 귀한 아기를 만나는 기적, 황금이 쏟아지는 기적까지. 기적은 흐른다.
누군가 절절하게 자신의 고민을 말하면, 내 마음 속에 나미야 잡화점을 짓고 그가 기댈 수 있는 포근한 이불 같은 답장을 쓰고 싶은 밤이다. 그에게 말해주리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믿어야 한다고. 너의 인생을, 너의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