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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l 17. 2023

SF에서 발견한 어떤 사랑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슬렌포니아 행성계에서 안나를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을 생각해 본다. 안나와 그들은 가벼운 인사와 포옹으로 짧게는 며칠 후 길게는 몇 달 후를 기약했을 것이다. 헤어짐에 눈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등교하는 아이를 배웅하듯, 회사 가는 엄마에게 인사하듯, 그거보다 조금 길게 포옹했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다린다. 안나를 기다린다. 엄마를 기다리고 아내를 기다린다. 아름다운 슬렌포니아 행성계의 어디로 안나를 데리고 갈지 서로 웃으며 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지구에서 슬렌포니아로 오는 우주선이 이제 마지막 출항이 될 거라는 소식을 듣는다. 아, 안나는 그 우주선을 타고 오겠구나. 그들 모두는 마지막 우주선을 맞으러 나간다. 그리고 안나는 오지 않았다.     


  그들은 수없이 생각한다. 안나는 왜 오지 않았을까. 안나는, 나의 아내는, 나의 엄마는 왜 오지 않았을까. 어쩜 처음부터 오지 않으려고 한 걸까. 그의 웃음 속에, 그의 찡그린 표정에 그런 징후가 보였던가. 나의 행동이, 나의 과오가 그렇게 만들었나.


  안나가 그럴 리가 있을까. 우리를 같은 하늘도 아닌 이 먼 곳에 보내놓고, 사실은 이별이 아니라 사별과도 같은 이 헤어짐을. 아니 사별은 헤어짐의 이유나 명확하지. 그들은 자신들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그 버려짐의 이유를 끊임없이 고뇌했으리라.


  안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지구에서 손꼽히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십 년간 심혈을 기울여 한 연구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태이다. 너무도 소중한 자신의 연구가 이제 반짝반짝 별로 떠오르기 직전이다. 그러나 그것이 떠오르면, 그 너머로 가족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두 가지 모두를 건져 반짝이게 할 길을 그녀는 택하지만, 세상의 허다한 일이 그러하듯 그녀는 그 사이에서 엉엉 울게 될 뿐이다.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 결국은 일을 택하고, 가족을 저버린 것. 그 선택을 한 것은 누구일까. 그것은 상황의 여의치 않음, 꼬여버린 일정, 갑작스러운 운항 중지 때문이 아니다. 사실 선택을 한 것은 안나 본인이다. 안나는 그 가슴 저미는 사실을 자각하고 길고 긴 170년의 인생을 산다. 


  그녀는 생각한다. 자신의 눈부신 연구. 인류의 미래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연구. 그러나 인류의 미래에 기여한다는 소명이라니요. 나는 지금 나의 미래와, 가족의 미래를 내 손으로 허물었는데요.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만든 기술을 이용해 자기 자신을 백 번 넘게 동결했다 해동했다 한다. 그녀의 심장은, 그녀의 뇌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다. 그녀는 사실 백 번의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얼리면서, 자신을 가족과 이별하게 한 그 기술로 자신을 얼리면서, 다시 깨어나지 않을까 봐 아니 다시 깨어날까 봐 얼마나 슬펐을까. 


  그리고 매번 깨어났을 때 잠깐의 멍한 시간 동안 그녀는 착각했을 수도 있다. 아, 잘 잤다. 남편은 일어났을까. 출근 시간에 늦었을까. 아아, 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 왜 이렇게 내 몸과 마음이 차갑지. 아아, 사랑했던 이들이 나를 영원히 떠났던가. 그랬던가.


  그녀가 잃어버린 세계는 그녀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내주고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내가 내준 것이 나의 모든 것이었음을 170살의 그녀는 가족과 함께 한 시간 보다 더 길게 매번 깨닫는 것이다. 이미 슬렌포니아 행성의 가족들은 죽었을 테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서 그들은 손을 흔드는 그 모습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안나는 냉정하게 모든 걸 잊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새로운 사람들과 살 수는 없었을까. 그녀는 명성과 돈이 있었을 텐데. 하지만 어떤 외로움과 쓸쓸함은 높고 깊어 상실의 상처를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안나의 이야기에서 이산가족을 떠올려 본다. 역시 심상하게 인사하며 며칠 후에 만나요 했을 그들. 그리고 젊었던 얼굴에 패인 고랑. 슬렌포니아 행성과 지구가 아닌데도 만나지 못하는 그들.


  그러니까 나는 SF소설에서 6.25 전쟁을 떠올리는 것이다. 김초엽이 말하는 신기술이 넘치는 소설에서도 내가 떠올리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그러니까 SF이든 6.25든 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까.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셔도 소용은.”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속도로 그들의 곁에 다다르는 그 시도는 허망하지만, 우리의 몸은 그들에게 다다를 수 없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그리움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므로 우리는 결국 그들에게 다다를 것이다. 안나는 저 우주를 넘어 당연히, 물론 슬렌포니아로 갈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우리 마음 속의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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