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에 대하여 #5

헨. 어떤 형태

by 서화

(곡을 들으면서 읽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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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이는 것에 대해 글을 더 많이 쓸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글을 더 많이 쓸까.

‘라디오’와 ‘사랑’ 중, 사람들은 단연

‘사랑’에 대해서 더 많은 글을 쓴다.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보이는 것을 소재로 글을 더 많이 적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감정이 글로 표현될 때, 감동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들 중 하나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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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되었든 가사가 되었든 우리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한평생을 보이지 않는 사랑에 대해 고뇌해 글로 적어낸다. 물론 우리들이라고 사랑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묘사한다. 가사에 ‘사랑‘ 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여러 질감들로 빗대어 사랑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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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보편적이지 않은 특정 두 사람만의 사랑일지라도

그 둘만의 특별한 추억을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추억인 것처럼 만들어낸다.

“비 오네, 소리 정말 좋다 그치”

이와 같은 문장을 입으로 말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가사를 들으며

각자의 사랑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왜일까?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계속 같이 있자.

가끔은 내리고 가끔은 쌓이면서“

연인과 비를 맞으며 대화를 해본 적이 없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든 눈이 내리고 쌓이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그렇게 이 가사는 개개인의 사랑과 익히 알고 있는 질감을 엮어 누구든 깊게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위 문장들에 ’사랑‘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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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사랑’을 어떤 하나의 형태로 빚어내어 우리가 눈이나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질감으로써 표현하는 것.

그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잘 해내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질감을 중요시해야 한다.

‘사랑’ 이라는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두 글자를

‘차가운’ , ‘따뜻한‘ , ‘밝은‘ , ’어두운‘ 과 같은 형용사들과 ‘들리는’ , ‘쌓이는’ , ’보이는’ , ‘물드는‘ 과 같은 동사들로

눈에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사랑’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감정이면서 동시에 누구든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니까.

누구든 느껴본 적 있는 감정이니까.

누구든 감동받아본 적 있는 감정이니까.

사랑을 표현해 낼 마땅한 말들을 찾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사람들이 글을 잘 쓰기 마련이다.

그게 아픈 과정이 되었든, 행복한 과정이 되었든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기에, 사랑을 더 다채롭게 표현할 질감들을 얻은 것 같다면, 충분히 좋은 과정을 겪어낸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