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 바스러지다
.
.
첫 연재작으로 [가사에 대하여]를 7편까지 연재한 시점에서, 지난 두 달간 여러 가지 음악들에 담긴 서사들을 소개하다 보니, 문득 “내 음악에 담긴 서사도 소개해보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세 편은 부끄럽지만 나의 서사를 짧게나마 담아보려 한다.
앞서 소개했던 음악들에 비하면 지극히 소박한 이야기들이기도 하고, 그다지 유려하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결국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서사들을 적어냈다 보니 나에게는 그 어떠한 것들보다 애틋한 가사들이다.
읽는 여러분들에게도 제가 느꼈던 감정들이 아주 조금이나마 흘러가길 바랍니다.
.
.
2년 전 여름, 제주도 여행 중 썼던 가사다.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던 제주도의 바람이 내 손 끝에 닿을 때마다, 애틋함과 설렘과 편안함과 부드러움 같은 내가 아끼는 감정들이 한데 모여 손가락 끝에서 바스러졌다.
‘바스러진다’ 는 표현을 그 자체로 보면
무언가 형태가 있던 것이 산산조각 나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표현을 촉감에 기대어 표현하게 되면
무언가를 굉장히 아끼는 마음이 뭉치고 뭉쳐
아주 작은 바람에도 그 마음들이 바스러져 느껴진다는 표현이 된다.
시각적으로 표현하기에도 쉽지 않은 마음이었고
그렇다고 단어 자체로 표현하기에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사의 형태를 택했다.
우도에서 보았던 푸르른 녹음들과
세화에서 보았던 노란색 유채꽃들과
그 안에서 느꼈던 시원한 양감들은
조각조각 내 손 끝에 박힌 채
추억이 되어 남았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혼자서 안고 살아가야 하는 기억이 되었지만, 내 지난 인생을 부정할 수 없는 이유는 결국, 이렇게나 선명히 바스러져 남아있는 촉감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2년 전에 써두었던 가사이지만, 지금 읽어도 그 당시의 따스함과 시원함이 생생히 느껴진다. 그것만으로도 이 가사의 역할은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한다.
.
.
눈가에 벼린
푸르른 녹음들도
날과 함께 저물고
귓가에 걸린
노란색 웃음들도
결국 떨어지고 나면
우리게 남는 건
온 몸에 퍼져있는
서로의 양감인 듯해요
음 —
바스러져 남은
손 끝에 빚은 사랑의 모양이
조각조각 가라앉아
고와진 그대의 마음일까요
우리의 부드런 사랑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