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 Street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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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많은 음악 영화를 보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특별했다.
음악으로 성공하는 한 밴드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교 밴드로 시작해서 고교 밴드로 마무리된,
성공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한 사람의 목표에만 관심이 있었던 소박한 밴드의 이야기여서 더욱이 특별했다.
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되었던 밴드 이야기가,
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성취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신선하다 못해, '음악'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정립한 듯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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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원래 한 사람으로 시작한다.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보겠다고 음악 만들기를 시작하는 사람 없고,
나라 살려보겠다고 음악 만들기를 시작하는 사람 없다.
그저 한 사람을 사랑해서,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자 방법을 찾다 찾다 만들어내는 것이 음악일 뿐이다.
코너에게도 '밴드'란 그런 것이었다.
라피나라는 한 여인에게 첫눈에 반해, 그저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저지른 형태가 밴드였을 뿐,
그에게 밴드는 성공을 위한 도구도 아니었고, 승리를 위한 과정도 아니었으며, 그저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았다. 음악을 제 의도대로 사용하는 것 같았으니까.
비록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마저도 우리가 음악을 통해 이뤄내고자 하는 삶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되었다. 작은 언덕에 잠시 앉아 두어 번 키스를 하는 장면이나, 배를 타고 막무가내로 런던행을 하는 장면이 그랬다. 음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허무맹랑한 청춘들이, 영상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코너의 상상 속 공연 장면이 참 뭉클했다. 청춘의 때에 한번 즈음은 상상하는 장면이지 않을까. 부모님은 사이좋고, 듬직한 형에, 좋아하는 여자가 나를 사랑해 주고. 코너가 바랬던 건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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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어느 누구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코너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모두의 지지를 받으며 노래를 부른다.
고등학생들이랑 어울리지 않겠다고 했던 라피나는,
고등학생들이 우글대는 디스코 파티에 제 발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 둘은, 고민도 하지 않고 런던으로 떠난다.
친구도, 돈도 준비하지 않은 채 그저 음악 하나만을 들고서 말이다.
100분의 러닝타임동안, '밴드'가 보여줄 수 있는 성취는 모두 보여줬다.
사랑으로 시작했던 밴드가, 사랑을 이뤄내는 데에 알맞게 사용되었으니, 어쩌면 가장 완벽한 성취가 아닐까.
쓸데없이 인물마다 밝고 어두운 면을 만들어서 입체감을 주지 않았다.
인물들 모두가 평면적이었으며, 모두가 멋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멋진 사람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사랑을 위해 음악을 만들고, 제 역할을 다하는데,
어찌 멋지지 않은 영화가 탄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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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음악을 만드는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영화였다.
[싱 스트리트]는 앞으로도 나에게, 가장 멋진 음악 영화로 남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