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숲

천선란 作

by 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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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고는 절대로 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땅 속 문명에서, 우정 혹은 동경의 형태를 띤 사랑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마치 회색빛이 감도는 세상 속에서 단 몇 명의 아이들이 색깔을 지닌 채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슬픔마저도 유별난 감정처럼 여겨지는 곳에서, 그 유별난 슬픔으로 서로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들에게는 유별난 슬픔이 곧 사랑이었다.


챕터 1,2에서는 사랑의 상실을, 그리고 챕터 3에서는 상실의 사랑을. 가장 대적점에 있는 두 가지 감정을 나란히 연결해놓고 보니, 묘하게 하나의 분위기 속에서 사랑과 상실이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살면서 진짜 사랑을 경험해 보지도, 눈으로 보지도 못한 채 그저 유별난 슬픔을 갖고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세상 속 사랑의 감정과 닮아진 거라고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세상으로부터 외골수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단 한 곳으로만 파고들던 작 중 인물들의 모습은, 사랑을 몰라도 누구보다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책에서는 많은 감정들을 다루고 있지만, 나는 천선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한 사랑의 생존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온갖 동물들은 시대를 지나면서 멸종되고 탄생하고를 반복하지만, 식물은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유지되며 특히나 이끼는 지금까지도 멸종되지 않는다는 것. 이를 말하면서 동시에 사랑을 말했다.


지하 도시의 질서 아래에서 인간의 대부분의 감정은 무뎌진 상태였다. 슬픔도, 기쁨도, 그저 한 순간의 감정일 뿐 사람을 흔들어놓지는 못했다. 그들은 지하 공간에서 점점 기계처럼 메말라갔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로든 ‘사랑’이라는 감정만큼은 남아있었다. 마치 이끼가 조용히 숨죽이며 종을 유지해 온 것처럼, 사랑도 처절하게 본인을 숨기며 멸종하지 않은 채 살아남은 것 같았다.


그저 잠들지 않고 지켜보는 것,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느라 온 기력을 다 쓰는 것, 애써 느리게 걷는 것, 그 사람이 보고 싶어 하면 기어코 보게 만드는 것.

지하 도시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던 감정은 바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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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지 않게 찾아오는 감정들이 있다는 거. 굴복하면서도 정복해야만 하는 그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느라 온 기력을 다 쓴다는 거. 사랑은 정말 체력이 필요한 일이야, 여러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