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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10시에 깼지만, 하루를 시작한 건 오후 4시였다.
분명 전날 밤까지만 해도, 오전에 산책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토요일마다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매주 실패한다.
오전 내내 냉장고 앞에서 세상 진지하고 중요한 고민을 하는 사람처럼 멍을 때린다. 할 일도 딱히 없고 심심해서 자꾸 냉장고를 열어보는 순간들은, 어느새 나를 철학자로 만든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린이날을 맞이한 것처럼, 마음껏 늦잠 자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아무 데도 안 나가고, 어른이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자유들을 마음껏 누리고 나면, “아, 오늘도 나 뭐 했지?”라는 궁상에 빠지고 만다.
사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어른들의 이야기다. 토요일에 애써 더 힘들게 살고 땀을 흘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애초에 토요일은, 세상에 정한 ‘쉬는 날이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다.
다만, 그냥 쉬는 게 아니라, ‘회복하는’ 시간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늦잠을 자는 게 회복일 수도 있고, 카페에 가는 게 회복일 수도 있으며, 조용하게 산책하는 게 회복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맞는 행동들을 하면 된다. 토요일은 하루 종일 얼간이같이 행동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나 회복하려고 한 건데?”라고 결론지어버리면 그만이다.
오늘도 나는, “평일의 나를 견디기 위해, 나를 조립한 거야!”라는 뻔뻔한 핑계를 대본다. 대신, 평일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지?
P.S. 운동을 해보려다 포기하고, 책을 펴보려다 닫고, 카페를 가려다 다시 침대에 눕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의 귀여운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