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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전염된다.
나는 좋아하는 색이 딱히 없었다. 색깔에 의미를 그다지 부여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난 초록색이 좋아”라고 하면 그때부터 초록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 내 옷장에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색의 옷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그 색을 오래전부터 사랑해온 듯 착각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옷의 색깔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말투가 입에 붙고, 그 사람의 취향이 눈에 맴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색을 좋아하면, 괜히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고, 노란색을 좋아하면, 괜히 봄을 기다리게 된다. 처음엔 단순한 관심이었다가, 어느 순간 내 습관들조차 그 사람을 닮아간다.
사랑은 그렇게 ‘색을 따라 하는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카멜레온은, 자신의 수려한 색을 포기하면서까지 생존을 택하지만, 사람들도 자신과 닮아 있던 색을 버리면서 사랑을 택한다. “너 요즘 얼굴빛이 좋다?”라는 말을 듣는 것도, 사랑에 잠식된 우리에게 있던 잿빛을 버리며 나타난 색 변화일지 모른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마치 색칠 공부 같다.
빈 도화지 같던 사람이, 한 사람의 색으로 덧칠되어 가는 과정은 그 어느 예술 작품보다 인간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