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by 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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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정리를 하다가, 먼지가 족히 2년은 쌓인 것 같은 라디오 플레이어를 발견했다.


2008년, 매일 밤 11시 50분이 되면, 내 머리맡에는 항상 조그마한 라디오 플레이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덧 고정이 되어버린 89.1 채널에 맞추면, 익숙한 유희열의 목소리가 노이즈와 함께 흘러나왔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연을 다 듣기 전에 항상 잠에 들었다. 라디오가 내게 주었던 건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연들이 아닌, 편안하고 잔잔한 잠자리였다.


음질에 열화가 심하고, 비 오는 날에는 뚝뚝 끊기는 일도 많았지만, 세상의 이런저런 그림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라디오의 역할은 끝이었다. 심지어는 그 열화 노이즈가 좋아서 들었던 적도 있었다. 요즘의 어린 친구들에게 노이즈는 '방해되는 무언가'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라디오를 들었던 세대에게 노이즈는 '왠지 모를 포근함을 주는 무언가'의 또 다른 의미를 갖는 것도, 라디오의 영향이지 않았을까 싶다.


가끔씩 이런 생각도 든다. "15년 전에 라디오를 통해 듣던 사연들의 주인공들은, 지금도 그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나는 단연코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에는 라디오의 주최자가 그 사연들에 일일이 답을 해주고,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지만, 정작 그 말들이 그들의 고민거리를 당장에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흐른 지금, 그들의 문제는 잊혀가는 추억 중 하나가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라디오는 나에게 이런 의미가 있다. '내 하루하루의 노이즈들도 결국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옅어지다 결국 가벼운 이야깃거리 혹은 추억이 될 것'


몇 번의 이사를 거친 지금, 라디오 플레이어는 항상 간직하며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