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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여름-생명력

여름, 그들의 강렬함은 오히려 무섭다

by 인유당

제주에서 지내는 것, 그냥 어느 한 구석에서 살아갈 뿐인데, 특별한 취급을 받거나 질문을 받는 일이 자주 있다. 약간 관종이기도 한 나는, 그것을 즐기기도 하며 성의 있게 대답한다.

나의 제주행에는 그런 들뜸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살고 싶음에는 그런 '특별한 기분'도 있다.


제주에서 지내는 데,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은, 그 놀라운 생명력들이다. 나는 그것을 신유물론적으로 '생기'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모든 것들이 살아서 엄청난 생명력을 뿜어낸다. 무섭기까지 하다. 곶자왈에 들어가면 그 엄청난 생명력에 놀란다. 곶자왈까지 갈 것 없다. 집에서 만나는 거미들, 그 거미들이 만드는 거미줄, 각종 벌레들, 길에 있는 식물들. 어느 하나 허투루 늘어져있지 않다.


그런 생명력이 무섭고 두려울 때가 있다. 한 여름, 초록이 왕성할 때, 그 초록이 기분 좋기도 하지만 치이는 기분이 드는 걸 나는 습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치부하지만 그 왕성한 기운은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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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나 나무에 특별한 애정은 없어도 나무들이 중력을 거슬러 꼿꼿이 자라는 게 경이로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덩굴식물에게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울타리나 기둥을 감으며, 그런 게 없다면 감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빙빙 돌며 자라다가 물체와 닿는 순간 그것을 휘휘 감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은 징그러웠다.

줄기에 빨판이 있고, 담이나 벽을 타고 기어오르며 벽면 전체를 덮을 정도로 강한 흡착력을 지닌 게 무서웠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듯 달라붙어서 기어이 파고들어 몸통을 불리는 게 지독해 보였다.

편혜영/홀/문학과 지성사 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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