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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공부하기-공부하는 삶

공부하는 삶 단순한 삶 간소한 삶

by 인유당

인생의 진리는 통한다. 공부하는 삶, 어떤 것을 지향하는 삶에 대한 방법론이나 원리는 모든 일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집중해서 열심히 그것을 향해 갈 것. 주변의 다른 것들은 정리할 것.

시간은 유한하므로, 체력과 내 능력은 유한하므로.

공부하는 삶을 원한다면 그것을 위해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독서 기록을 살펴보니, [공부하는 삶]을 2014년 10월 7일에 읽었고 2024년 7월 13일에 읽었다. 우연히도 10년의 차이. 2014년에는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2014년은 그냥 그냥 살아가던 때였다. 방향도 없고 울분과 억울함만이 가슴에 가득한데 해소할 길이 없어 이 책 저 책 읽던 시절이었다. 뭘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었고(뭐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으며, 이건 눈감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욕망은 지구의 핵 근처 땅속의 마그마처럼 부글거리는데, 그것이 무언지 정체도 몰라 simple life, 미니멀리즘, 단순한 삶을 방향으로 잡았었다. 그러니까 욕망의 크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를 안정시켰었다.


그러나 2024년에는 인생의 해법을 얻은 양 인상 깊었기에 오늘 이 글로까지 이어갈 만큼 기억에 남았다. 2024년 7월이면 진학하여 계속 공부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할 때였다.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앙주의 [공부하는 삶]에도 공부를 위해

절제하고

신체를 돌보고

식사와 수면에 신경을 쓰고

일상생활을 단순화하고

사교활동을 삼가고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는 등 삶의 모든 측면을 규율화 할 것을 권한다.


다른 어떤 낱말보다 한 낱말을 유념해야 한다. 반드시 삶을 '단순화'해야 한다. 당신 앞에는 험난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떠나지 마라. 짐의 양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규칙을 정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73


책에서 밑줄 친 부분을 옮겨본다.

삶의 속도를 늦추어라. 연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방문, 이웃과의 형식적인 교제, 아주 많은 이들이 남몰래 질색하는 인위적 삶의 온갖 복잡한 의식들은 공부하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사교활동은 공부에 치명적이다. 과시욕과 방탕한 정신은 사유를 파멸시키는 적이다. 누군가 천재를 떠올릴 때 만찬에 참석한 천재의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과 사유, 자원, 역량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일과의 그물에 뒤엉키지 마라. 관습을 고분고분 따라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안내자가 되어 관습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라. 74-75


진리를 나누어주기 전에 먼저 스스로 그것을 얻어라. 그리고 파종할 씨앗을 낭비하지 마라. 87


참된 지식은 넓은 표면이 아닌 깊은 곳에 있다. 학문이란 원인을 통해 탐구하는 지식이며, 원인은 뿌리처럼 깊숙이 내려간다. 우리는 늘 통찰을 위해 넓이를 희생해야 한다. 우선 넓이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며, 통찰은 우리가 관찰한 사실의 핵심을 알려주고 우리가 끊임없이 발견하려 했던 실체를 부여주기 때문이다. 172-173


허겁지겁 읽는 것, 자제하지 못하는 습관, 정신을 해치는 과도한 마음의 양식,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쉽고 익숙한 다른 이들의 사유에 안주하는 게으름은 금해야 할 것들이다. 212

끊임없는 진동이 쇠를 마모시키듯이, 끊임없는 시각적 자극은 정신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원인이 된다. 대단한 독서가가 자신의 눈과 뇌를 혹사한다면, 그가 진정한 공부를 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213


아퀴나스는 네 가지 규칙을 제시했다. 첫째, 기억하려는 것을 정돈하라. 둘째, 기억하려는 것에 깊이 몰두하라. 셋째, 기억하려는 것을 자주 생각하라. 넷째, 기억한 것을 회상할 때는 나머지를 떠올리게 해 줄 기억 사슬의 한쪽 끝을 잡아라.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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