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가 되어라
[아무튼, 실험실] 이란 책을 읽고 있다. 대학원생으로서 나의 자질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나로서는 책, 윤튜브 동기부여 영상을 주기적으로 본다. 영양제 먹듯이, 마약처럼 뽕을 차오르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한다. 여기에 내가 뭔가 기획해서 책 한 권 내는 게 버킷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읽고는 싶지만 책의 홍수에 빠져 살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구매는 잘 안 한다.(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돈이 없는 건 아닌데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산다. 책을 살 돈은 있지만 책을 사서 둘 공간을 확보할 돈은 없다.)
그러던 중 이 책은 긴급하게 샀다. 아직 도서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기다리기 싫었다. 당장 이번 뽕은 이 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책 많이 본 사람의 촉.
그래, 나는 이 책을 읽고 다시 내가 독립연구자로 살아야 할 이유 같은 것을 얻는다. 내 연구를 위해 선행연구 조사부터 하는 것처럼, 내 앞을 먼저 걸어간 독립연구자들의 이야기는 소중하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패를 많이 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넘어져 무릎이 깨진 이야기는 꽤 도움이 된다. 그 사람들이 그러려고 넘어진 건 아니겠지만.
아래는 이 책, [아무튼, 실험실]에서 연구실에 들어간 저자가 의심할 줄 모르는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는 지점이다. 나도 이 부분에서 꽤 심각하다. 대학원생의 자질이나 재능 중 하나는 바로 '의심할 줄 아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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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장 25-27절 53쪽
사람들은 흔히 도마를 믿음이 부족하고 의심이 많은 인간의 대명사로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과학을 하는 나로서는 예수의 제자 중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인간형이 바로 도마다. 만일 도마가 내 실험실에 들어오겠다고 한다면? 일단 합격이다. 53
문제는 실험실에 들어가고 대학원생이 되고서 발생했다. 논문을 다 읽고도 아무 의심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뭘 어떻게 의심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왜'라고 질문하기보다 교과서를 읽듯 논문 내용을 그저 받아들였다.
실험실 동료들은 나와 달랐다. 논문을 읽으며 의문을 제기하고, 부족한 부분을 잡아내고 어떤 실험을 추가해야 하는지 평가했다. 55-56
실험실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그렇게 의심 없이 그저 성실하기만 한 나를 깨닫는 일이었다. 생각 없이 매일 똑같은 실험을 반복하기만 하는 나는 로봇과 뭐가 달랐을까. 아니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나는 로봇마도 못한 것 아닌가. 과학 하는 도마가 되려면 의심은 상대에게뿐 아니라 나에게 역시 날카롭고 예리하게 정조준하고 있어야 하는 거였는데.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