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논문쓰기: 티끌 같은 일을 모아 태산 논문이 완성
일이란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그 시작은 무엇이며 그 끝은 어디인가.
일의 핵심이 있고 부수적이라 생각되는 것의 스펙트럼.
갑자기 일의 범위를 이야기하는 시작은 요즘(요즘이라고 하기 부끄럽다) 학술지에 투고할 논문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이다.
하고 있는 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곧 글의 소재.
ㅅㅂ ㅅㅂ이건, 앗싸이건간에 뭔가 자꾸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논문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나 논문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 컴퓨터 앞에 앉아 워드를 치는 것. 주제를 잡고 관련 자료를 모으고 생각에 생각을 하기. 목차를 잡고 공부를 하고. plan do see feedback. 루프 반복.
글을 쓰는 일이 아무리 메인이라지만, 그거에만 시간과 노력안배를 하면, 곧 그 외의 부수적인 일들을 해야 할 때마다 소위 말해서 빡친다.
석사논문을 쓰다가 제일 많이 화가 나고 화를 냈던 것은, 서류를 내는 행정절차였다. 아마 처음 하느라 낯설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전에 외국어, 전공시험을 봐야 하는 등 석사논문을 쓸 자격요건을 갖추는 것은 조금 시간이 떨어져 있으므로 이야기에서 제외하자.
이번에 탐라문화학술연구회의 연구지에 논문을 투고하려 준비하다 겪은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1) 요구하는 글씨폰트가 아래한글에 없다. 우리집 아래한글 버전이 오래되어 그런가, 체험판을 쓰고 있어서 그런가 고민고민하다 검색을 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보급하는 무료폰트란다. 무료/유료가 중요한 게 아니고, 아니... 폰트라는 것을 어떻게 다운로드하여 어떻게 아래한글에 넣어야 하는가의 방법을 나는 모른다. 해본 적이 없다. 검색을 하고 폰트를 받아 압축 풀기까지는 했다. 그리고 아래한글에 들어갔는데 내가 다운로드한 폰트가 안 뜬다. 잠시 절망. 그러다가 아,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실행해야 하는지도 몰라. 그러기 위해 이제까지 작업한 것들이 날아기지 않도록 잘 저장하고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켰다.
아, 된다 된다....... 그냥 명조체로 논문을 작성하라고 하는 학교가 새삼 고마웠다. 그런데, 내가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스스로 해낸다는 이 작은 성공들이 기쁘냐 하면..... 물론 기쁘고 뿌듯한데, 그전에 헤매고 당황하고 땀 삐질삐질의 당황스러움이 훨씬 크다.
2) 참고문헌 정리 순서가 학술지마다 다르다.
저자-논문명, 학술지, 권호수, 학회명, 년도...... 이 차례에 맞게 정리해야 한다.
이게 시간 많이 잡아먹는다. 쉼표 , 와 마침표 . 구별이 잘 안 가고 자꾸 들여다보면 점점점..... 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논문에 참고문헌 많이 넣는 걸 좋아하는데, 이거 정리하기 힘들어서 점점 줄이게 된다.
3) 무식한 짓거리.
이건 아래한글 등 워드프로그램의 기능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일어날) 일이다. 한마디로 내 무식을 탓할 일이다. 스타일을 만들 줄을 모른다. 예를 들어 각주에 글자체, 글씨크기 등을 지정할 수 있을 텐데, 할 줄을 모른다. 어디 가서 배워야 할지 어디서 얼마만큼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할 줄 몰라서, 기존에 논문 썼던 선배의 파일을 얻어다가 거기에 내 글자만 바꿔 넣었었다. 엑셀, 파워포인트, 아래한글 정도는 눈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되어야 어려움이 없을 텐데. 적어도 어떤 기능이 어디에서 돌아가는지는 파악해야 할 텐데.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각주 50개를 일일이 블록지정해서 다 바꾸었다. 50개였기에 망정이지....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한다더니...... 그 말이 딱이다.
4) 아직도 끝나지 않는 발연기.
교수님이 투고할 학술지를 지정해 주셔서 그 학술지를 내는 연구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원고투고 원칙, 양식을 받아 읽고 숙지했다만
앞으로 '독립연구자'가 되면 투고할 학술지도 내가 알아보고, 기한 원칙 양식 투고료납부 심사의 절차 등도 내가 감당해야 한다.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는 그게 내 발목을 잡을, 다 만들어 떠먹여 주는 친절한 지도교수님 아래에 있으니 그나마 여기까지 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편하면 나중에 고생을 한다. 많은 일들은 대략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총량이 있다)
나같이 겁 많고 새로운 일을 두려워하지만(새로운 음식 먹는 데만 용감한 듯)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묻지도 못하는 타입의 사람은 이거 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러다가 나도 무기력에 빠져 미루기병에 걸리거나 자기 합리화만 열나 잘하는 변명하는 사람이 될까 봐 겁난다.
5) 또 폰트타령.
영문초록으로 갔더니만 또 Amerigarmnd BT 인가하는 글자체가. 이번엔 폰트를 한번 다운로드하여 본 경험이 있어서 검색해서 덜 헤매고 스무스하게 진행했다. 처음 폰트다운로드할 때는 대문자 CB이었지만 이번에는 작게 cb로 마무리했다.
6) 영문초록 번역하기.
딥엘로 했다. 자세히는 안 보고 그냥 몇 개 단어들 잘못된 거 수정했다.
7) 종이로 살펴야 하는데 인쇄를?
집에 프린터가 없다. 주민센터에 종이를 가지고 가면 소량인쇄는 가능하다만 10장 넘어가면 못하게 한다.
대개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작업하기 때문에 학교 도서관에서 유료로 인쇄한다. 여기는 프린터도 없는데 화면으로 보는 거랑 종이로 보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며, 꼭 종이로 인쇄해서 봐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대략 종이인쇄를 해주는 업체를 검색했는데, 마땅하지가 않다. 근처에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 두엇에게 사무실에서 40장 정도 인쇄를 해줄 수 있는지의 여부를 타진했다. 한 사람에게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인쇄결과물을 가지고 만나기로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이 되었을 때 일어난 남편에게 인쇄에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더니만, 요즘은 인쇄를 PC방에 가서 하는 거란다. 아하... 그렇구나. 피씨에 관한 많은 것은 거기에서 해결되는 거구나.
석사논문을 쓰면서 나는 논문만으로 머리가 터지는데 기타 행정적인 서류들을 갖추는 일이 힘들었다.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은 것은 그래 논문을 써서 석사자격을 획득하는 건 자격에 적합한 질 높은 논문만을 쓰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이 모든 절차를 해내는 것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지금 투고논문을 준비하는 것도 그렇다. 알아보고 논문 쓰고 투고하고 '심사/ 거절/수정 후 게재여부 심사/거절 혹은 게재' 절차를 통해 연구자가 되어 가는 거다.
작은 일,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일, 작은 일이................ 결국 일하는 사람, 연구하는 사람을 만드나 보다.
곰이 동굴에 들어가 쑥과 마늘만 먹는 단호하지만 단조로운 조건이 차라리 가장 쉬운 일이었을 수도.
지금 여기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학술지 논문투고를 처음 해보느라 힘들어서일 것이다.'라고 머리로는 스스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하지만 역시나 짜증부터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짜증 나...라는 말을 쓰지 않고 귀찮아...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세분화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짜증은 해야만 하는 일인걸 알지만 하기 싫을 때. 귀찮아는 조금 미루거나 안 해도 되는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일의 범위, 하찮아 보이는 일도 소중히 하라.... 이런 식의 교훈이 있는 책을 찾아보려 했는데,
최근에 나온 조수용의 일의 감각. 조수용을 좋아해서 최성운의 사고실험 인터뷰를 반복해서 보았다. 사소하고 하찮은 일도 해야 한다는 말은 김이나의 에세이에서 보았다. 김이나도 음악 관련회사에 들어가서 사무직으로 근무했다. 처음부터 작사만 하겠다고 하지 않고 겸직하며 조금씩 작사가로서의 일의 비중을 높였다.
돈 많이 벌고 싶고, 폼나는 중요한 일 하고 싶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일도 소중히 해야 한다고 한다만, 쉽지 않다.
논문투고는 논문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논문 쓰기가 한 글자 한 글자 논문만 쓰는 일을 말하지 않는다.
일의 범위를 넓고 크게 보자. 티끌 같은 일을 모아 태산 논문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