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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숲섬 Dec 29. 2022

제주 산담-나는 산담을 갖고싶다

연말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산담‘산담’은 제주도의 무덤 양식 가운데 육지부와 다른 양식 제주 사람들은 집이나 밭, 무덤의 경계를 돌을 쌓아 만들었다. 집 울타리의 돌담을 '집담', 밭의 돌담을 '밭담', 무덤의 돌담을 '산담'이라 일컬었다.

산과 산담이 눈에 띄면 사진을 찍는다. 

 남국사 앞의 산담. 그후 이곳은 이장을 했는지 담만 남고 무덤은 사라졌다.

사진: 밭 한가운데에 있는 산. 제주시 아라동. 제주대 후문근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라는 책제목이 있다. 죽음은 아침에만 생각하기 좋은 것이 아니라, 희망찬 새해에 생각해도 좋다. 죽음에서는 어쩐지 쓸쓸한 냄새가 난다. 드립커피를 마시려고 커피를 갈아 그 향에 취하면 즐겁다. 그리고나서 반나절쯤 지나 아까 내린 커피를 재활용하면 찜찜한 맛이 나는 커피가 되니 그 맛이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운 시를 읽기도 한다. 백석의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같은 시.

  ‘신의주 남쪽 유동에 사는 박시봉 집에서’라는 뜻으로 편지에 적는 발신인의 주소에 해당한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약간 쓸쓸한 듯 이런 시를 읽지만, 실은 혼자 지내는 이 좁디좁은 원룸이 가족들과 사는 대도시 브랜드 아파트 대궐보다 좋다. 또 백석에게 기대자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흰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죽음이라는 육체의 종료는 피할 수 없는 끝이다. 한줌의 재가 되어 허공에 흩뿌려지거나 단지에 들어가 납골당 어느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끝은 그럴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어딘가 공간을 차지해야한다. 집이라는 벽이 있고 천장이 있는 어느 막힌 곳에서 살아야한다. 

  죽은 후, 내 몸은 어디로 갈 것인가.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 강력했던 문화충격은 버젓이 밭 중간에 있는 산과 산담의 존재였다. 육지에서는 무덤은 산 속 깊은 곳, 그래서 성묘를 가려면 등산을 각오해야하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산이라고 부르는 무덤이 바로 옆에 있으니 죽은 자와 산자가 공존한다. 삶과 죽음이 따로있지 않은 순환이라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삶속에 묻어있다.. 제주 민요중에서 ‘청산에랑 어멍을 묻곡 녹산에랑 아방을 묻곡 청산 녹산 서녹산새에 불리는 건 눈물이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거기에 딸린 해설을 보면 '이 노래에서 산에 집을 지었다는 표현은 돌아가신 부모를 장사지내서 묘를 만든 것에 종종 비유된다. 청산에는 어머니를 묻고, 녹산에는 아버지를 모셨다' 고 한다. (출처: 한라산 총서 72페이지’ 한라산의 구비전승 지명 풍수’ 중에서) 강정효가 한국일보에 쓴 글에 '제주사람들은 무덤을 묘라 부르기보다 그냥 ‘산’이라 표현한다. 또한 묘 주변에 돌담을 쌓아 울타리를 만드는데, 이를 ‘산담’이라 부른다. 그래서 조상의 묘소에 찾아가는 것 또한 ‘산에 간다’라고 표현한다. 오름 사면에 오름의 형태와 비슷한 산과 산담은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자원이라 할 수 있다.'이라는 부분이 있다. 저 민요의 산은 산담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오름에 무덤이 많은 이유는 한라산 자락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생사관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오름에만 무덤을 쓰는 것은 아니다. 마을의 밭에 묘를 쓴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지관(地官)이라 불리는 풍수사가 묘 자리를 잡아준 경우라고 한다. 

 죽어서 꼭 배우자옆, 고향, 선산, 부모님옆에 묻힐 필요가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곳, 내가 있고 싶은 곳에 남고 싶다. 뜨거운 불속에 들어가 내 육신을 태우고 뼈가루가 되어 버린다. 태어나기 이전의 무가 되어 아무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러나 보편적인 방법이라면 납골당 어느 한 자리를 차지하리라. 내가 주장한들 내 소원대로 될리 없는 게 죽은 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내가 확인할 방법도 없다. 내가 죽은 후 남은 사람들이편한 곳에 내 한줌 뼛가루를 묻을 것이다. 

제주의 장례풍습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매장이 금지되었으니 새 산담이 생길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중산간 어느 오름에 산이 되고싶다. 겹담 양식의 장방형 산담을 검은 현무암으로 두르고 오른쪽에는 신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시문(神門)이 있는 멋진 산담을 갖고싶다. 시문이 없는 경우에는 평평한 돌로 계단모양을 만들기도 한다는데 그 계단을 통해 신이 드나든다는 의미라니 그런 소박한 산담을 가져도 좋으리라. 죽은 후 갖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 이것도 산 자가 할 수 있는 사치이다. 오늘을 기쁘게 살자 같은 교훈으로 글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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