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생활
1년 중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건 언제일까?
가정생활에서의 빨간불이 5월 가정의 달이라면
내 개인적으로 빨간불, 목돈이 나가는 건 8월이다.
8월에는 2학기 등록금을 납부해야 하고
그리고 집을 계약해야 한다.
오늘,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계약을 종료하고 싶으면 2,3달 전에 통보해야 하므로 오늘까지 서로 연락이 없었다는 건, 1년 연장이라는 의미이다.
늘 생각한다. 내가 연고도 없는 곳에 와서 살고 있고 이사 많이 다니겠다고 덩치 큰 가구나 살림살이를 들이지도 않고 1년에 한 번은 새로운 환경, 새로운 동네, 새로운 집으로 다니고 싶다고.....
그러나, 게으른 건지, 말만 그렇게 하고 실은 주거의 안정성을 원하는지
한번 어딘가에 눌러앉으면 아주 결정적인 사유가 있지 않은 한, 불편함을 그냥 참고 감수한다.
이사에 애쓰지 않는다.
이사를 할 상황이 되면 머리 복잡하면서, 안 해본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면과 걱정을 앞세운다.
내가 사는 집에 큰 불만이 있는 건 아닌데
막연하게 다른 곳에 가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그런데.... 뭐.... 그냥.... 또.... 1년 연장했다.
다만 잠깐 망설인건 집값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예상치 못한 요구였다.
지금쯤 이사가려는 생각이 있었다면, 집 시세를 알아보느라 '돈'생각을 좀 했겠지만
그냥 눌러앉았다가
학교가 아라동으로 이사가면 그때나 근처로 옮길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다.
이사할 때도 시세를 그다지 알아보지 않은 채 그냥 계약을 했고
그 후에도 시세를 알아보지 않았으며
주변에 전월세 사는 사람들이 없어(그냥 다 제주민들이다) 비교해 볼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주해서 사는 분들은 모든 식구들이 와서, 거의 집을 샀다)
집주인 말로는 원래 싸게 내놓았고, 요즘 집값이 올랐으니 올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너무나 큰 인상이었고, 나는 안 해본 '딜'을 했다.
계속 살고 있는데, 좀 깎아주세요.....라고.
600으로 올려달라는데, 깎아달라고 말하는 순간 머릿속으로는 580 정도 생각했는데
집주인이 잠시 망설이더니 550은 어떠냐고.
집주인도 독한 사람 아니고 나도 독한 사람은 못 되는 거 같다.
그러겠다고 하고 8월에 계약서를 주고받고 돈을 입금해 드리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제주도에는 '연세(年貰)'라는 게 있다. 월세가 한 달에 한 번씩 돈을 내는 거라면 연세는 1년 치를 한꺼번에 선납하는 형태이다. 1년 치를 한꺼번에 지불하는 만큼, 한두 달 치를 깎아준다. 제주도사람이 주인이면 연세를 선호하고 육지사람이 집주인이면 월세를 선호한다. 속칭, '죽어지는 세'라고 불린다.
이렇게 나의 사라캠퍼스 생활과 사라캠퍼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집을 다시 1년 확보했다.
언젠가부터 소망이 '집집집'이다. 집을 사거나, 좀 편안한 곳이 갖고 싶다. 조금 사치스러울 만큼 안락할 곳이 갖고 싶기도 하다.
집에만 가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렇게 밖에 못 사나. 뭐랄까, 궁색한 느낌이랄까. 그게 싫으면 좋은 곳에 가서 살면 될 거 아냐 싶다가도 아니야, 내가 지속적인 제주생활을 이어나가려면 아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 질문은 많은 것들을 포괄한다.
뭘 먹을 것인가라는 메뉴의 선택부터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인생전반의 큰 그림까지.
그리고 그 안에 어디에서 살 것인가,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라는 라이프 스타일도 포함이다.
선택과 결정, 모든 것에는 내 가치관, 취향이 담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나'란 사람,
'그럴 수도 있지'라는 편안함을 갖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