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와 지적질에 소질 있다
평가와 지적질에 소질 있다고 썼는데, 그것을 잘한다기보다는 뭐랄까, 재미있어한다는 것에 가깝다.
어제 '시민법정' 발표문 초안을 봐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발표자는 삭사과정 대학원 선배이고, 사회교육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현선생님이다.
함께 학교를 다닌 적은 없는데, 선후배 모임에서 만나 알게 되었고, 어찌어찌 대화를 할 기회가 주어져서 그래도 서로 글을 봐주거나, 힘들 때 커피를 마시며 뭔가를 의논하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주로 내가 뭔가 의견을 묻거나 모르는 것을 물어보게 될 때가 많다.
지내보면 알게 된다. 내가 쓸 논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으며,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사람 또한 귀하다. 대학원이라는 곳이 소수이며, 각자 연구주제가 다르다. 특히 어쩌다 나는 저녁에 수업이 이루어지는 곳에 다니고 있는데, 밤에 수업이 끝나면 다들 훌훌 집에 가기 바쁘다. 대화도 자꾸 해야 할 말이 있는데.... 그냥 안부만 묻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
이 발표문은 거의 30페이지에 달한다. 모르는 분야를 읽어낸다는 건, 쉽지 않다.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읽었다. 그리고 뭔가 내가 한마디라도 해서 도움이 되길 바랬다.
읽어가며 종이에 노트한 것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큰 덩어리의 지적과, 띄어쓰기나 오타 같은 세세한 지적으로 나누어 보냈다.
1. 악플보다는 나쁜 게 무플이라, 글 읽은 티를 내느라 빠르게 피드백드립니다.
2. 완성되지 않은 원고, 중간과정의 글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전문가가 아닌 '날것'의 평가에도 뭔가 직관적인 이해를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4. 선행연구는 탄탄한데, 그것을 기반한 선생님의 논리나 주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5. 자료 나열의 느낌이며 환대와 연대의 시각으로 바라보겠다고 했지만, 약합니다. 환대와 연대에 관한 개념만 설명하고 적용은 안된 것 같습니다.
6. 분량: 발표는 따로 PPT를 만들어하신다니 분량 걱정은 접겠습니다. 그러나 발표문으로 이렇게 긴 글은 보기 드문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의 평가나 피드백은 나중에 이 글을 확장, 보완하는데 큰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 환대의 개념은 말만 꺼내놓고 제대로 적용이 안된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에 있는 [사람 장소 환대] 책을 보시면 그 개념의 적용에 힌트를 얻을 수 있으실 거 같습니다. 제가 본 논문들 중에서는 이런 개념은 난민을 다루는 글에서 많이 본 것 같습니다. 한두 편 정제되고 잘 된 글을 찾아보시면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8. 만약 한 개념만 집중해서 쓰신다면, '연대'를 추천합니다. 시민법정이라는 게 법적효력은 없는데, 약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거잖아요. 윤여일이라는 사회학자의 글을 추천합니다. 주로 현장기록이 많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읽어본 글 중 '연대'에 관해서는 좋았습니다.
9. 교육적 효과에 대한 부분도 분량이나 적용이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10. 본 발표문은 두 개로 나눌 수 있는 거 같습니다.
1) 시민법정의 정의 필요성 판례 그것의 시사점+ 환대와 연대의 개념
2) 시민법정의 분량을 줄이고 + 교육적 효과 교육에의 적용
=> 3) 시민법정+환대+교육적 효과 교육에의 적용 모드를 넣고 싶다면 정신대, 베트남 판례를 얼마만큼 정리해서 본문에 넣을 것인지 고려하셨으면 좋겠습니다.
11. 4장이 이 글의 핵심처럼 보입니다. 분량이나 서술이 공부한 걸 모두 넣겠다는 의욕이 넘칩니다. 4장이 만약 핵심이라면, 그 글까지 가는 길 1~3장이 너무 길고 험난합니다. 이것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으면 알아야 할 게 너무 많고,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지루하고 자세합니다. 읽는 독자의 수준을 어디에 맞출 건지도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12. 참고문헌 정리. 출판사 연도 페이지? ->통일된 방식으로 정리 필요.
13. 단락, 문단이 자주 바뀐다. 개념 사고 흐름을 조금 큰 단위로. 가독성은 좋으나 자주 끊기는 느낌.
14. 사족: AI를 사용하여 평가를 받아보세요. 클로드가 잘 봐준다고 들었습ㄴ이다. 요약을 시키지 말고, 거의 완성된 내 글을 넣어 평가를 시키면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정중하게 받을 수 있다고들 하네요. 내 글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좋은 글이면 쓸만한 충고를 들을 수 있다고 하니, 한편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클로드, 제미나이가 최근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