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부책-남들이 내게 준 상처를 잊지 않겠다
기록의 힘. 무섭다.
가끔은 그냥 스쳐지나 망각 속으로 보내도 될 일을 남겨
두고두고 곱씹는 일이 과연 내게 유익인가.
부모를 죽인 원수 기억할 때 유용할 '기록'.
오늘의 내 '기록'은 어떤 의미일까.
내 공부는 내가 부여잡고 해야 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내 멱살 내가 잡고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
가족은 최대의 지원이자 방해물이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말을 꺼낼 때는 '이혼불사'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집을 떠나 타지에서 공부를 하겠다 했을 때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최대의 지원은 역시 남편의 무관심이었다.
공부를 시작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그렇게 시작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역시나 가정행사이다.
친인척의 결혼, 장례, 환갑 회갑 등등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일은
호주에서 있은 조카 결혼식에 가느라 1주일 이상 거의 열흘의 시간을 호주에 다녀온 것.
그것으로 가장 큰 일 했다.
그런데, 부가 업무가 하나 더 하달되었다.
8월 31일 연대 동문회관에서 친척결혼식이 있단다.
참석해 주면 좋겠다는 어머님의 바람.
남편의 사촌형 아들인데, 남편의 사촌형은 몇 년 전 암으로 죽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사촌형의 부인도 암으로 투병 중이라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데
가서 축하해 주고 얼굴을 보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이시다.
나는 좀 정이 없다.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들어하는 타입은 아니다.
특히 가족 간에 '정'이라는 걸로 괜히 서로 참견하는 걸 싫어한다.
'약간의 거리'를 두는 걸 선호한다.
시어머니는 다정도 병인양 하는 타입이고, 맨날 외롭다는 타령을 하신다.
원래 인간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고,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 체력을 넘어서는 무리는 하지 않으련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어머니의 바람 같은 건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할 수 있기를.
어머니의 바람은 바람이고, 나는 나다.
9월 1일 개강이다.
9월 1일 월요일, 제일 수업이 많은 요일이기도 하다.
아라캠퍼스에서 6,7교시 통역번역대학원 '번역이론'.
사라캠퍼스 10~12교시 통일문제연구 수업이 잡혀있다.
첫 수업이라 진도가 많이 나가지는 않겠지만, 수업은 수업이다.
첫 수업이라 진도가 많이 나가지 않는 이유는 모두에게 시동을 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비행기는 8월 30일 저녁비행기이다. 이것도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29일은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 내과 등등에 정기검진이 잡혀있었다.
이번 여름에 하지 않으면 추석 이후로 미뤄야 하고, 추석에 육지 오며 다시 여러 일정을 잡아야 하기에
조금 늦게 제주에 들어가게 되었다.
적어도 하루 이상(8월 31일, 일요일)은 집에서 온전히 머물러야 한다.
시차적응도 해야 하고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움직이는 건 힘들다.
일찍 내 공부처에 가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생활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스며들듯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란 무얼까.
수행하듯
숨 쉬듯
그렇게......
그렇게, 여기저기 얼굴 다 내밀고
내 할 일 다 해야 하면
공부는 물 건너간다.
이 주장은, 내가 가족행사에 참여하기 싫어서 하는 핑계인가
아님 정말 '공부인'이 되겠다는 다짐인가.
친정엄마에게는 말했다.
엄마, 사람 좋게 여기저기 얼굴 다 내밀고 내 할 일 하느라 박사학위가 늦어지는 것보다
싹수없는 년, 못된 년 소리 들어도 빨리 학위 받는 게 훨씬 나아.
많은 공시생 동기부여영상들을 보면,
일단은 공부에만 전념하여 공시에 합격하고 나면
공부하느라 못했던 일들이 다 묻힌다고 했다.
그러려면 공부는 왜 하냐고 묻는다면,
내가 하고 싶으니까,
그렇게라도 하고 싶으니까.
박사학위를 미치도록 받고 싶은 건 아닐지 모르지만
나도 뭔가 눈에 보이는 성과, 결과물 하나는 갖고 싶다.
그게 지금 내게는 '학위'이다.
그래.... 내가 여기에 기록을 남김은
시어머니가 내게 이것저것 요구하신다가 아니라
싹수없는 년, 못된 년 소리를 듣겠다는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