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종일 비가 내린다.
한 달에 1~2번 정도 운이 닿아 여유 나는 늦은 오후엔 아이 학원 라이드를 해 주고 가까운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 내게 주어지는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책을 읽다가 눈이 아파 잠시 고개를 들었더니 창 밖 썬쉐이드 틈으로 맑은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회색 하늘이 펼쳐지고 구름이 흐른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연두 이파리는 초록으로 짙어지겠지. 도랑으로 흐르는 빗물들은 도시 구석구석의 건조함을 촉촉하게 적셔주겠지. 저마다 다른 색깔의 우산들 속에는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낸 사연들이 있겠지. 함께 쏟아지는 빗줄기가 각각 홀로이듯 우리도 제각기 살아가는 인생.
문득 스치는 생각들 속에서 나도 젖는다.
2.
빗줄기가 창문을 긋는다.
내 마음을 긋는 무언가처럼 주르륵 흘러내린다.
꽃 진 자리처럼 빗물도 자세히 보면 흔적을 남긴다.
3.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말러 교향곡부터 시작한 내 플레이리스트가 어느새 김동률 목소리까지 흘러왔다. 이 감미로움을 오롯이 느껴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개인적 상념에 젖을 수 없었던 지난 겨울부터 봄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나에게 주어지는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살다가 어떤 큰 산을 넘게 되면 깨닫는 것은 늘 같다.
당연하다 여기던 것들의 소중함.
그것이 복원되기를 바라는 간절함.
그리고 평범한 일상과 주어진 삶에 대한 감사함.
4.
유시민의 개정증보판 <청춘의 독서> 맨 뒷꼭지를 읽고 있다. 책을 많이 좋아하는 나는 요즘 도통 짬이 나지 않아 안타까운데, 그래도 좋은 책은 그 어떤 핑계 사유가 서지 않고 읽게 된다. 잠들기 전 눈꺼풀을 비비며, 아이를 기다리며, 틈틈이 다시 읽어도 이 깊은 사고력과 통찰력은 부러움을 넘어 언제나 존경스럽기만 하다. 더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정말 좋은 책이다.
인생의 허들을 넘을 때마다 독서를 통해 얻은 지혜와 위로가 나에겐 큰 힘이 되었다. 수많은 지성인들의 고민과 사색이 많든 적든 내 것이기도 하다는 그의 말에 절감하며, 씨앗 한 톨 같은 독서를 통해 나는 그들의 지혜를 빌리고 내 안의 풍성한 나무를 키운다.
얼른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자.
5.
바깥은 이제 또 다른 세상.
그사이 빗줄기 더 굵어지고 어스름 내려앉았다.
조금만 더, 이 여유를 붙잡고 싶지만..
이쿠, 수업 끝나는 시간이다.
'답사이로막가 설레임'이 별명인 아이 픽업하러
비 사이로 나도 감히, 막 달려 보련다.
(5/16/2025, 水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