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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들을 애도하며

대만 기행[1]

by 선화

덜컹, 랜딩기어가 바닥에 닿아 울린다. 무언가가 끝났다는 신호처럼, 내 심장도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흔들림이, 왜 이렇게도 깊이 파고드는 걸까.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그 사실에 안도했다는 마음이. 이 무사함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 만큼 세상은 기울어져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경계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이 순간이 어쩌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감각이라 생각했다. 그저 출발하는 길일뿐인데, 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낯설다.


전 날 아침, 늦게 눈을 뜬 나는 익숙한 뉴스 알림을 확인했다. 화면 속, 익숙해야 할 풍경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불길과 파편, 침묵 속에서 번져 나오는 공포.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숨죽인 듯 울부짖는 흔적들. 저곳에 남겨진 고요함은 비명보다도 크고 처절했다. 그곳에 흐르는 모든 것이 소리였다.


저 사람들은 왜, 어떤 이유로 저렇게 떠나야만 했을까. 그들은 무엇을 품었을까. 하늘로 흩어져버린 이름들과, 아직 바닥에 남아 흔적을 헤매는 꿈들. 기쁠 땐 웃으면 되고 슬플 땐 울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허무는 어디에 놓아야 하는가. 허무하다는 말은 너무 가볍다. 그보다 더 날카로운 단어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다. 허무라는 감정은 손에 닿지 않는다. 마치 검은 연기처럼 내 안을 채우며 사라지기를 거부한다.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여기서 멈춘 것일까, 아니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일까. 우리는 늘 잃어버린 것들 속에서 살아간다. 잊히지 않는 이름들, 멈춘 시간들, 닿지 않는 목소리들.


그러니 살아남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무런 대답도 없기에, 그저 질문만을 품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삶은 허무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삶은 허무 속에서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비록 겁에 질린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겠지만, 나는 기도한다. 그들이 다시 하늘을 날 수 있기를. 그들의 무게가 우리의 날개가 되기를. 우리 모두 언젠가 더 높은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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