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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언어는 낯설다

나는 그 외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by 선화

나는 예술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미술과는 어딘가 거리가 멀었다. 가장 추상적이고도 무형의 언어로 채워진 캔버스 앞에서 나는 자주 침묵했다. 그 언어가 나를 부르지 않았기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조각 작품은 가끔 말을 걸어오기도 했으나, 그마저도 오래 붙들리지 못한 채 지나가곤 했다.


이거 봐.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지 않아? 마치... 무언가가 내 속을 뒤흔드는 것 같아.


그니까 그 무언가가 뭔데.

음, 미안하다.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한때 마음에 품었던 사람과 미술관을 찾았던 날이 떠오른다. 은은한 조명과 하얀 벽에 걸린 그림들 앞에 선 그녀의 목소리엔 경탄과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그림이 들려주는 비밀의 언어를 읽어내며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저 눈치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겐 이곳의 언어가 들리지 않았다. 그림들은 나를 지나쳐 흘러가고, 그녀의 감동조차 먼 물결처럼 닿지 않았다.


그래도 그래피티 같은 것들은 꽤나 좋아한다. 길 위에 휘갈긴 색감들, 숨이 찬 듯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바스키아라던가 뱅크시라던가. 음, 바스키아 쪽이 더 가깝겠다. 거칠고 혼란스러운 세계. 그 혼란 속에 진실이 있었다. 마음에 들었다. 막 그은 듯한 그의 선 하나하나, 터치 하나하나는 어딘가 방향을 잃은 듯하면서도 결국 나를 향해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역시 무제(타락한 천사). 인간 존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저 형상은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 마치 거짓말을 꿰뚫는 눈빛처럼, 혹은 나조차 외면하고 싶었던 내면의 어둠을 끌어내려는 시선처럼. 가끔은 그 눈길이 너무 날카로워 섬뜩함에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그것조차 허사다. 눈길을 피해 내리면, 자연스레 시선은 장기와 성기에 닿는다. 거기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이는 찢기고 흐트러진 인간의 초상이자, 우리 존재의 심연을 비추는 일그러진 거울이다. 그림 속 붓질은 날 선 비명 같고, 원색의 폭발은 피와 숨이 뒤엉킨 혼돈이다.


바스키아는 내가 막연히 느꼈던 인간의 내면을 이미 그 손으로 실체화했다. 나약함과 분노, 욕망과 자유를 캔버스 위에 있는 그대로 던져 놓았다. 붓질 하나, 낙서 같은 선 하나도 혼란스럽지만,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은 강렬하다. 천당과 지옥의 경계를 부유하며, 모든 이가 가진 내면의 두 얼굴을 끄집어낸다.


나는 도망칠 수 없다. 그의 그림은 피할수록 더 강렬하게 다가와, 나를 직면하게 만든다. 그것들은 눈길을 외면하는 내게 말한다.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라. 이것이 너의 진짜 모습이다.”


나는 문득 멈춰 선다. 가만히 생각한다. 이 떨림이 진실일까? 그들의 외침을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걸까. 모르겠다.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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