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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과 방황

대만 기행[4]

by 선화

대만에 온 지 10일이 지났다. 아직도 돌아가기엔 조금 시간이 남았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행이 아니라, 그저 삶의 연장선에서 낯선 땅을 밟아본 것이. 그래서일까.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숨이 트이지 않는 듯한 이 고요함 속에서, 출장 온 직장인들이 느낀다는 막연한 공허함을 문득 깨닫는다.


평일엔 학교와 연구소를 오간다. 바쁜 듯, 그러나 한없이 느린 걸음으로. 저녁이 되면 숙소로 돌아와 배달 앱을 켠다. 배민 대신, 이곳의 우버이츠를. 화면 속 낯선 언어와 뒤엉킨 메뉴들.


타이페이가 아니라 타이난이라 그런가. 사람들과의 소통조차 녹록지 않다. 그들은 영어를 모르고, 나는 중국어를 모른다. 마치 투명한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서로의 말들이 바람처럼 흩어진다. 그렇게 손쉬운 배달 음식을 선택한다. 복잡한 번역기 대신, 편안한 침묵을.


그러다 새벽에 출출해지면 근처 세븐일레븐으로 향한다. 주말 중 하루는 통째로 쉰다. 남은 하루는 나들이를 나간다. 멀리는 못 나간다. 그렇다, 이곳의 생활은 한국의 생활과 사뭇 다르지 않다. 그래도 한국의 매운맛은 좀 그립다.


아무래도 나는 여기서도 사람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다. 낯선 환경에도 마음을 열지 못한 채, 고립된 삶을 선택했다. 나를 지키려고 닫아놓은 문을, 더 촘촘하게 막아버렸다. 빛조차 들어오지 않게.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되돌아보겠지. 지금은 어리석은 청춘이다. 그럼에도 찬미하겠지.


라고, 여겼던 사상에 금이 간다. 슬슬 공기가 탁해진다. 질식할 것 같아. 환기가 필요하다. 남은 기간 동안 문을 열 수 있을까. 시커메져 버린 이 방 안에서. 일단 문부터 찾아야 한다. 어디든지 좋다. 방황하고 더듬어라.


생각해 보면 매일매일을 돌아가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던 것 같다. 이 글을 빌려 룸메에게 사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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