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기행[5]
시간이 좀 생겨 가오슝으로 떠났다. 전철에 몸을 실었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거리. 창밖 풍경은 타이난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뚫린 부둣가를 걸었다. 가슴을 향해,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노크한다. 반갑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동시에 무서웠다. 이 방 밖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문을 열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문을 밀고 나왔다. 아직은 우러러본 동경이. 너무나도 눈부신 것 같다. 눈이 타들어 간다. 눈물이 나온다.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시야를 좁히자, 귀가 열렸다. 중국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 뒤섞인 소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소란이 나를 괴롭혔다.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를 막았다. 아직도 난 사람들을 믿는 것을 멈춘 채인가 보다. 질문조차 던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걷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묻는 것을 포기하진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일단 걷고 있다. 혼잣말이지만, 중얼거리고 있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가슴 깊숙이 울림이 전해졌다. 쿵.
이것은 여운? 아니면 무언가의 전조? 아니면 그저 단순히 땅의 떨림일까. 모르겠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갔다. 치진섬의 언덕을 오르기로 했다. 사람은 드물었고, 고요는 짙어졌다. 언덕 위에 다다르자 오래된 포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요새처럼 단단하고 낯선 그곳이 나를 붙들었다. 마음 한구석이 그곳에 닻을 내렸다.
어느새 태양은 수평선에 걸쳐졌다. 붉은빛이 내린 시선 아래 틈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조차 낯설고 두려워, 차라리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닿은 곳에 태양은 없었다. 오히려 황금빛 파편이 되어 춤추듯 흩어졌다. 파편들을 붙잡아야 했다. 그렇지만 더러워진 손이다.
도대체 무엇을 무서워했을까. 오히려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을, 온전히 마주하는 일이 오히려 두려웠던 걸까. 이어폰을 집어넣었다.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출항인가 보다. 떠나는 것들을 바라보며. 이 손을 흔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