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기 짝이 없는
나는 아직도 사랑을 하고 있는가. 어리석고, 꼴사납고, 실수투성이의 사랑을. 늘 미완성인 채로, 어딘가 모자란 채로. 그렇게나 부족하고, 무책임하고, 비겁한 사랑을. 그런 사랑을 나는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가.
사랑은 가장 쉬운 기억의 방식이다. 손끝에 남은 체온, 마른 입술에 스치는 이름, 문득 지나치는 향기 속에 숨겨둔 목소리. 사랑받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살아있고 싶다. 이 부서질 듯 위태로운 생에서,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잔재하고 싶다. 그렇기에 사랑을 한다. 아니, 사랑을 한다고 믿는다.
기억은 책임이다. 마음이 머문 자리마다 짙게 남아, 다시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나를 떠난 사람들, 내가 떠나온 사람들, 떠남조차 허락되지 않은 얼굴들. 그 좌절과 후회와 어두운 밤의 탄식들을, 나는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가. 감당할 수 있는가. 그럴 자격은 있는가.
어이없이 생명과 꿈이 사라지는 이 푸른 별 위에서, 사랑은 너무나도 흔하다. 흔한 만큼 흔하디흔한 눈물이 되어, 때론 웃음이 되어 우리를 가득 채운다. 그런 사랑을 나는 끝없이 탐닉한다. 어쩌면, 질릴 법도 하건만.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울고 웃는다. 사랑스럽게. 절망스럽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손에 들어온 것은 이미 손끝에서 사라지고, 남은 것은 결국 허기진 채 나를 울린다. 부족하다. 언제나 부족하다. 그러나 그 부족함마저도 사랑이 아니던가. 아쉬움과 상실을 안고, 우리는 다시 사랑을 찾아 헤맨다. 마치 아이가 처음 본 장난감을 갈망하듯이.
나는 사랑을 한다. 아니,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증명이기에. 나약함과 비겁함을 숨긴 채,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머문다. 끝내 그것이 패배일지라도, 무너질 운명일지라도, 나는 사랑을 하고 싶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두렵다. 이 사랑이 정말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금씩 나를 고요한 침묵 속으로 빠뜨리는 것인지. 우리가 끝내 도달할 곳은 어디인가. 사랑은, 진정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사랑을 속삭인다. 사랑을 꿈꾼다. 그리고 사랑을 한다.
나는 지금도 사랑을 하고 있다. 그 서툰 손길을 부끄러워하며.
나는 지금도 사랑을 하고 있다.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을 삼키며.
나는 지금도 사랑을 하고 있다. 살아남고 싶다는 희망을 안고.
언제까지나.
무한히.
어리석게.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