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범인

가장 특별한 평범함

by 선화

모든 것을 잃은 곳에서

오로지 나만이 남아 있었다.


비어버린 손끝을 응시하며

나는 문자를 새긴다.

그것이 부서진 유리처럼 흩어질지라도,

허공을 떠돌다 끝내 아무에게도 닿지 못하더라도.


저 달까지 닿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글자를 적어나가야 할까.

얼마나 많은 문장이

허공 속에서 스러질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세상에는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자,

1을 10으로 확장하는 자,

그리고 100을 완성시키는 자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1을 소중하게 지켜가며 1로 유지한 사람,

1을 10으로, 10을 100으로 확장하는 길 위에서

망설이는 손을 붙잡아준 사람


그런 이들이 그리는 풍경을 나는 좋아한다.

이름이 남지 않아도,

그것이 기록되지 않아도.


연결하는 것.

그것은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욕망.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실처럼 이어지고

그 끝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를 때,

나는 거기에 존재할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텅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