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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율

예술의 힘

by 선화

유튜브 뮤직 리캡에 따르면 나는 2024년 대략 7만 6천 분 동안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라이브 영상을 자주 보기 때문에 유튜브에서의 재생시간을 합치면 족히 10만 분은 들었을 것이다. 10만 분이면 순수하게 약 70일가량을 음악만 들었다는 뜻이려다.


나는 읽는 것을 듣는 것보다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내 시간을 기록해 보면 듣기의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걸을 때도, 쉴 때도, 심지어 책을 펼쳐 들고 있을 때조차 나는 무언가를 듣고 있다. 소리 없는 순간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내 하루는 음악으로 채워진다.


음악은 모든 예술 중에서, 1933년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독일인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에 협력한 유일한 예술이다. 음악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징발된 유일한 예술 장르다. 그 무엇보다도, 음악이 수용소의 조직화와 굶주림과 빈곤과 노역과 고통과 굴욕, 그리고 죽음에 일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예술임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파스칼 키냐르 , 음악 혐오 中-


나는 이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음악, 넓게는 예술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실로 깨끗하지 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탐욕이 닿는 모든 곳에서, 예술 역시 때로는 아름다움의 얼굴을 한 채 타락하기도 한다.


몇 달 전, 한 영상을 보았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날카로운 공습경보가 도시에 스며들었다. 단선율의 사이렌, 죽음을 예고하는 날카로운 소리. 그 속에서 한 여성이 화음을 얹고 있었다. 그 경고음을 따라가며 자신의 목소리로 음계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 몸을 흔들며, 마치 한 겹 한 겹 레이스를 덧대듯 목소리로 음악을 직조해 낸다.


그녀는 절망을 조율하고 있었다.


그것은 거부인가, 수용인가. 아니면 단지 살아 있음의 증명이었을까. 나는 그 영상을 보며 강렬하게 동요했다. 그녀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예술은 위로가 되고, 때로는 절망이 된다. 그렇다 해도, 나는 듣는다. 예술은 영원히 인간을 따라다니는 운명 같은 것이기에. 우리는 끝없이 보고 들으려는, 예술을 갈망하는 존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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