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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에 머무는 따스한 기억들

by Camel

빈 방에 머무는 따스한 기억들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옛집 창가에 섰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이 방에, 햇살만이 고요히 내리쬐고 있다.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스며드는 빛이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희미하게 춤추는데, 그 빛 속에서 나는 우리의 기억들을 본다.


이 작은 방의 벽지는 여전히 그대로다. 시간이 흘러 색은 바랬지만, 우리가 함께 고른 그 꽃무늬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엄마와 내가 한참을 고민하며 골랐던 날, 두 사람 다 같은 무늬를 가리키며 웃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구석의 작은 흠집들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생이 처음 걸음마를 배우며 넘어졌던 자리, 내가 실수로 장난감을 던져 생긴 자국, 아빠가 직접 못을 박아 달력을 걸었던 곳. 지금은 빈 벽이지만, 그때의 소리와 웃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창가 아래 작은 틈새에는 우리가 매년 키를 재던 연필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조금씩 자라나는 우리를 보며 엄마가 지었던 미소가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그 자국들처럼, 우리의 추억도 이렇게 남아있다.


방 한가운데 서서 천천히 돌아본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이 공간이, 한때는 우리의 일상으로 가득했다. 아침마다 들리던 알람 소리, 저녁이면 모여 앉아 나누던 이야기들,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싶어 뒤척이던 순간들...


이제는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빈 방은 우리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햇살 속에 떠다니는 먼지처럼, 우리의 기억들은 이 공간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을 따스한 기억들이, 이 빈 방을 영원히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방을 나선다. 하지만 알고 있다. 언제든 이 곳에 돌아오면, 우리의 추억들이 따스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 줄 것이라는 걸. 빈 방이지만, 우리의 사랑으로 여전히 가득한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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