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계 바늘 사이에서
오래된 사진첩을 펼쳤다. 그 속에서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다. 불과 몇 년 전의 사진인데, 마치 다른 시간대에서 살았던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때의 나는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 가능성들이 하나둘 현실이 되거나, 혹은 영영 놓쳐버린 꿈이 되어버린 것을 지켜보고 있다.
시계 바늘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발견하는 작은 변화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눈가에 새겨진 주름 하나, 흰머리 한 가닥, 조금씩 느려지는 몸의 리듬까지. 청춘이란 마치 손바닥 위의 모래처럼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
스물셋, 스물여섯, 서른, 서른다섯...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마치 열차를 타고 낯선 역들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 각 정거장마다 내려야 할 것들이 있고, 새로 실어야 할 것들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내려놓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들이 있고, 실어야 할 새로운 짐이 두려울 때가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누군가는 이미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이루었고, 누군가는 아직도 자신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SNS 피드를 스크롤할 때마다 쏟아지는 타인의 '성공한' 순간들이 나의 불안을 키운다. "나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마음을 갉아먹는다.
과거의 선택들이 走馬燈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그때 조금 더 용기를 냈다면, 그때 조금 덜 두려워했다면... 후회와 미련이 밤마다 찾아와 속삭인다.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미래는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져 있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점점 더 불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다는 것을. 지나간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앞으로의 시간들이 있기에 여전히 꿈꿀 수 있다. 과거의 실수들은 교훈이 되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놓쳐버린 기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이제는 시계 바늘과 조금 더 친해지려 한다. 시간은 흐르되, 그 흐름 속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으려 한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그렇게 나의 속도로 걸어가려 한다. 청춘이 가면서 잃어버리는 것들도 있지만, 그만큼 새롭게 얻는 것들도 있으니까.
결국 인생이란 완벽한 지도 없이 떠나는 여행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시계 바늘은 계속해서 돌아가겠지만, 이제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 안의 시간과 조금씩 화해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