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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지현 Oct 04. 2023

도마뱀, 14

열두 겹

  딸아이가 태어났다. 내가 보기에는 못난 데 없이 올망졸망 귀엽고 입꼬리가 사랑스러운 것이 아내를 빼다 박은 듯한데 어머니는 매번 딸이 나를 쏙 빼어 닮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손녀딸을 보다 입을 다무는 것을 잊고 그만 침을 흘리실 만큼 내 딸아이를 좋아라 하셨다.


  내 어머니는 나를 낳을 적에 지독한 난산을 겪었다 했다. 해서 아내의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어머니는 덜컥 손을 떨며 며느리를 다독이셨다. 어떡하니, 하는 말을 하셨던 것도 같다. 나는 듣지 못했으나 그 일로 집에 돌아가 아내의 분을 받았으니 아마 하셨을 것이다. 나는 일단 무조건 어머니가 너무하셨다며 아내를 달래 두고 며칠 후에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어머니가 나를 낳으실 적에 심하게 힘이 드셨었대. 그러잖아도 혼자서 하시는 출산인데 그만 죽을 뻔도 했고, 계속 정신을 잃어서 간호사한테 뺨도 맞고 그래가면서 출산을 하셨다고....... 그래서 당신이 걱정되어서 그러신 것 같아. 우리 아이를 반기지 않으시는 건 절대로 아니야.




  아내가 평소 좋아하던 민트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들고 퇴근해 안겨주며 말하자 아내는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몰랐어. 내가 오해했네. 속으로 큰 한숨을 내쉬며 아내를 끌어안았다.





-





  아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순산을 한 편이었다.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되고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아이를 품에 안았고, 나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분만실에서 탯줄을 자르고 있었다. 비명에 가까운 아기의 쨍한 울음소리가 머리를 더욱 멍하게 만들었다. TV를 보면 아기들은 뽀얗고 투명하고 어여쁘던데, 우리 아기는 왜 이렇게 빨갛고 못난 것일까.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 알고 있기에 나는 입을 잘 간수하고 흰 거적에 돌돌 싸인 아기를 조심스레 받아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와, 못생겼어.




  그러나 아내는 순수한 감탄처럼 그 말을 내뱉었다. 방심하고 있었다면 그만 웃어버렸을 테지만 팽팽한 긴장의 끈을 아직 놓지 못한 상태였기에 입을 합 다물고 참아낼 수 있었다.




  왜, 예쁘기만 한데. 우리 공주님, 안녕. 아빠가 많이 만나고 싶었어.




  나는 이제 답이 무엇인지 아는 아빠 도마뱀이다.





-





  놀랍게도 빨간 원숭이였던 딸아이의 정체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다. 아이는 하루하루 얼굴이 달라지더니 요정보다도 천사보다도 아름다운 어떤 것이 되었다. 나는 태어나 이렇게 예쁜 아기를 본 적이 없다. 분만실에서는 내가 너무 긴장을 해서 무언가 잘못 보았던 것일 테다. 혹은 아이도 나를 닮아 탈피를 할 줄 아는, 도마뱀으로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저 먼 옛날 전래동화 속 어느 못난 여인이 허물을 벗고 난세의 영웅이 되어 나라를 구한 것처럼 대단한 인물로 거듭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조그마한 코, 자그마한 눈에 꽉 찬 검은 눈동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서는 늘 젖을 찾듯 오물대는 입술, 촉촉한 두피 같은 뺨 사이로 자리잡은 자그맣지만 나름의 존재감을 뽐내는 턱까지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런 것까지 제 아빠를 닮았을까. 얘, 아가, 느이 남편도 어릴 때 이렇게 순하고 잘 울지도 않구 낯도 안 가렸어. 모빌 하나만 달아 줘두 혼자서 얼마나 눈을 요래, 요래 굴려가며 좋아하는지.......




  그때부터 이미 나는 눈을 굴리는 버릇이 있었구나. 신기해서 듣고 있는데 잠자코 맞장구를 치는 아내의 표정이 미묘하다. 평소 어머니께 너스레를 잘 떠는 아내의 입술 끝이 양쪽으로 당겨진다. 이것은 좋은 신호가 아니다.




  와이프도 어릴 때 그렇게 착하고 순했대. 지금도 봐, 이 사람이니까 나랑 살아주는 거지. 그리고 우리 딸이 뭘 나를 닮아. 내가 코가 이렇게 높기를 해, 얼굴이 갸름하기를 해. 우리 딸도 엄마 닮아서 제가 이렇게 예쁘네요, 고맙습니다, 할 걸.




  부드럽게 타박을 어머니의 품에 넘겨주고 대신 어머니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으니 고소한 아기 정수리 냄새가 훅 풍겨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냄새, 희망이 충만해지는 냄새를 폐부 한껏 채워넣고 동그란 이마에 입을 쪽쪽 맞추고 나서 아이를 아내에게 내미니 아내가 웃으며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님, 안아 보시겠어요?

  내, 내가? 어이구... 내가 갓난쟁이를 안아본 일이 없는데.......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바지에 연신 손을 비벼 문지르며 서성이다 아이에게 두 손바닥을 펼쳐 팔을 벌렸다. 아내가 내 손에서 아기를 받아 아버지의 두툼한 손에 들려 드리고 적당히 팔을 고쳐 자세를 잡아 주었다.

  다소 어정쩡한 자세에 불편할 듯 싶지만 순한 아이는 아주 잠시간 칭얼거리다 이내 잠잠히 눈을 끔뻑였다.




  내 정신 좀 봐. 새아가, 너 먹이려구 소갈비찜을 했는데....... 이따 가지고 가라, 응? 출산하고서는 철분이 많은 걸 먹어야 한대.

  어머, 어머님, 접때 무릎 아프다고 그러셔 놓구... 너무 힘드셨겠어요, 웬 소갈비예요.

  뭘, 고생이랄 것두 많다, 얘. 고생은 슬아 낳느라 네가 다 했지....... 아기 한 번 낳고 나면 온 뼈가 다 시려. 이 불편할까 봐 갈비를 어제 낮부터 꼬박 하루는 고았으니 걱정 말구 먹어. 조리원에서는 미역국만 주니까 얼마나 지긋지긋하니....... 엄마가 온갖 약재 쏟아부어 만든 거니까 헌수 주지 말구 네가 다 먹어야 해, 응?

  아이 참, 그럼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다 먹을게요, 어머님.




  주고받는 내용이 영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두 여자는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동시에 까르륵 웃음을 터뜨린다. 그 뒤로 핏기가 이제 막 가신 조그만 아기를 보물처럼 안아들고 둥가둥가 얼레는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비친다. 요즘 조리원에서는 미역국만 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아내 역시 그렇다. 부엌으로 분주히 종종걸음하는 어머니의 등 뒤로 뜨뜻한 햇빛 한 줌이 드리운다. 방금까지 엄마가 앉아 있던 자리에 슬그머니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묻는다. 그 위로 아내의 반짝이는 시선이 덮인다.


 


  아아, 비로소 깨닫는다. 꼬리가 없는 도마뱀도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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